‘촛불민심’ 주도 대통령 탄핵 불구
친박·비박계 진흙탕 싸움 돌입
‘배신·8賊’ 등 거론 서로 탈당 요구

“막장 드라마 또 봐야 하나…”
‘진정한 보수 가치’ 외치는 비박계
미련 버리고 ‘광야’서 홀로서기를

지난달 30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비상 의원총회’를 개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담화 직후였다. 퇴진시기 결정을 국회에 맡긴 대통령의 속뜻이 꼼수든 아니든, 임기 단축 논의와 관련 의원들의 총의를 모으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의총은 금세 친박과 비박계가 정면충돌하는 양상으로 번졌다. 이날 친박(親朴) 의원들은 엄중한 사태 해결보다 ‘촛불민심’ 성토에 열을 올렸다.

김진태 의원은 “(공산주의 세력이 침투해 있는) 일본 JR노조 사람들도 촛불집회에 나와 광화문을 누볐다. ‘보수 불태워버리자’는 얘기 나오는 게 순수한 집회인가”라며 100만여 시민이 참여한 촛불시위를 깎아내리는데 주력했다. 김 의원은 “바람이 불면 촛불도 꺼진다”는 발언으로 LED촛불까지 등장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양 김태’로 불리는 김종태 의원은 “그만한 흠도 없는 대통령이 어딨느냐”며 박 대통령을 감쌌다. “오보(誤報)를 터뜨리는 언론 때문에 대통령 지지율이 5%까지 내려갔다”는 주장도 버젓이 나왔다. 보다 못한 비박계 의원이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국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며 분위기 전환에 나섰으나 친박계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쇠귀에 경(經) 읽기’도 이보단 쉬울 터다. 손톱만큼의 반성조차 없이 ‘네 탓’으로만 돌리는 친박들의 행태가 놀라울 따름이다. 이를 놓고 일부 언론은 ‘갈라파고스 친박’ 혹은 ‘갈라파고스 새누리당’이라고 낙인(烙印) 찍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은 지난 9일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됐다.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299명이 참여한 투표 결과, 234명이 찬성했으며 반대는 56표에 불과했다.

야 3당과 무소속을 합쳐 172명이 모두 찬성했다고 가정하면 새누리당 소속 의원의 절반에 가까운 62명이 탄핵(彈劾)에 동참했다. 비박계는 물론 친박 성향 상당수가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것이다. 내심 ‘부결’을 기대했던 친박 지도부의 꿈은 무참히 깨졌다. 이에 따라 대통령만 믿고 날뛰던 친박 세력은 자칫 ‘폐족(廢族)’으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박 대통령 탄핵 찬성률은 78%로, 국민 여론(78.2%~81%)과 거의 일치했다. 국회가 촛불민심(民心)의 정확한 뜻을 읽고 따른 것이다. 결과가 이렇다면 친박은 조금이라도 자성하고 자중해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을 꼭 빼닮은 ‘친박의 오기(傲氣)’는 상식을 초월했다.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가 12일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배신(背信)의 아이콘’으로 규정하며 탈당을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강성 친박인 이장우 최고위원은 이날 “김 전 대표와 유 의원은 먹던 밥상을 엎고 쪽박까지 깨는 인간 이하의 처신을 했다”고 독설(毒舌)을 날렸다. 비박계로 구성된 비상시국위원회 황영철 의원이 탄핵 사태와 관련 이정현·최경환·서청원·조원진·이장우·홍문종·윤상현·김진태 의원 등 8명을 ‘친박 8적(賊)’으로 규정하고 당을 떠날 것을 요구한데 대한 화답인 셈이다.

이 최고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피해자인 척 코스프레 하는 김무성과 유승민은 한마디로 적반하장이자 후안무치”라며 “대통령 탄핵을 사리사욕을 위해 악용하는 막장 정치의 장본인”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들의 ‘원죄(原罪)’도 들춰냈다. 예컨대 김 전 대표의 경우 2012년 ‘박 대통령은 하늘이 준비시킨 후보’라고 말한 적이 있다는 식이다. 이른바 ‘나 죽고 너도 죽자’는 물귀신 작전에 다름 아니다.

‘박순실 게이트’를 통해 대한민국의 막장 행태를 익히 알고 있는 우리 국민들로선, 새누리당의 진흙탕 내분(內紛)에서 또 다른 ‘막장 드라마’를 봐야 할지도 모른다. 국민들은 이제 지칠대로 지쳤다.

비박계가 ‘진정한 보수의 가치와 부활’을 말하려면, 더 이상 새누리당에 대한 미련과 집착 등 기득권을 버리고 비바람 몰아치는 ‘광야(廣野)’에서 홀로 서기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아직도 보수(保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도리다.

갈라파고스는 대륙과 뚝 떨어진 망망대해에 놓여 있으나, 보다 더 나은 상태로 변화하고 발전하려는 ‘진화(進化)의 전시장’이기도 했다. 이처럼 새 생명의 기운이 용솟음쳤던 곳을 ‘친박 또는 새누리당’과 비유한 것 자체가 갈라파고스를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