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화’로 筆名 떨친 류철균 교수
정유라 학점특혜 연루 특검 소환
朴정권 깊숙한 관여 드러나 ‘추락’

국정농단 ‘모르쇠’로 일관하는
박근혜·최순실·김기춘 등…
‘그들만의 제국’은 과연 어떤 것?

이인화의 장편소설 ‘영원한 제국’이 출간된 것은 지난 1993년이었다. 이탈리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조선시대의 ‘정조 독살설(毒殺說)’을 다루고 있다. 양쪽 모두 사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조합한 팩션(faction) 소설의 전형이다.

이탈리아 어느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사건을 그린 ‘장미의 이름’엔 당시 교황과 황제 사이의 세속권을 둘러싼 다툼, 교황과 프란치스코 수도회 사이의 청빈(淸貧) 논쟁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움베르토 에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자신의 해박한 인류학적 지식과 기호학 이론을 총동원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영원한 제국’ 역시 정조 독살설이 배경이다. 무너져가는 조선왕조를 왕권 중심으로 재건하려는 세력과 이에 맞서는 권문세력간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에코의 추리기법을 빌려와 ‘성리학적 사유(思惟)’의 대립 논점을 제기한다. 이 성리학적 사유의 충돌이 규장각을 중심으로 한 살인사건을 일으킨다는 줄거리다.

두 소설 모두 출간과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나중에 영화로도 제작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영원한 제국’의 경우 무려 100만부 넘게 책이 팔리면서 이인화는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필자도 당시 ‘한국에 이런 작가가 있었나’ 하며 소설을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만큼 소설가 이인화의 재능은 뛰어났다. 대구 출신으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8년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1966년생이니 불과 스물 두 살 때의 일이다. 그리고 1992년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로 제1회 작가세계문학상을 받으며 탁월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영원한 제국’ 대박 이후 ‘소설가 이인화’는 점차 잊혀져 갔다. 한때 장편 역사소설 ‘인간의 길’로 박정희 미화(美化)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소설 외적 차원의 일이었다.

그랬던 그가 ‘류철균 교수’(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란 이름으로 특검에 소환되며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구속영장이 청구된 그의 혐의는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씨의 딸(정유라)에게 학점 취득 등의 특혜를 줬다는 것이다. 류 교수는 정씨의 대리수강 및 대리시험 의혹이 불거진 ‘영화 스토리텔링의 이해’ 담당 교수였다.

진위(眞僞) 여부야 특검조사와 재판에서 가려지겠으나 전도유망했던 소설가 이인화를 알던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더욱이 그가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 청년희망재단 초대 이사 등을 역임하는 등 박근혜 정부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실망을 넘어 탄식이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껏 일반이 모르던 사실도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지난 199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국 근대사를 다룬 역사소설 ‘인간의 길’을 썼을 때의 일이다. 출간을 앞두고 작가는 어느 일간지에 “강력한 왕정이 혼란한 민주주의보다 낫다”고 주장했다. 비록 세종대왕을 지칭한 말이었으나, 인류가 피눈물 나는 희생 끝에 얻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봉건시대의 왕을 오히려 동경하는 반(反)역사성을 드러냈다는 게 비판론자들의 논리다.

이는 소설 ‘영원한 제국’의 재해석으로도 이어진다. 우리에게 ‘개혁군주’로 알려진 정조가 개혁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물론 그 이면에는 백성을 위한 마음도 있었을 터다. 하지만 결국은 절대부패 등의 문제로 무너져 내린 왕권과 권력을 강화하려는 지배이데올로기가 위민(爲民)에 앞서 그 원천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지금 대다수 언론은 류철균 교수의 경우를 보며 ‘영원한 제국’의 몰락(沒落)이라고 평한다. 소설가 이인화나 류 교수란 자연인을 떠나 ‘지성(知性)이 추락했다’는 서글픈 추도사에 다름 아니다.

대한민국을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은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들에게 다시 묻고 싶다. 박근혜나 최순실이, 김기춘과 우병우가, 그리고 이에 부화뇌동했던 지식인그룹과 친박(親朴)세력이 꿈꿨던 그들만의 ‘영원한 제국’은 과연 어떤 것이었나.

붉은 닭의 기운을 가득 안고 정유년 새해, 2017년이 밝았다. 그러나 새벽을 깨우고 새로운 희망을 알려야 할 닭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탐욕(貪慾) 등이 초래한 고병원성 AI로 인해 산채로 땅에 파묻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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