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대면조사 실패
청와대 ‘군사상 비밀 장소’ 거부
최순실 제집 드나들 듯 한 곳

떳떳하다면 수사 적극 협조해야
‘죄와 벌’ 우리 사회 약속
쿨 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난공불락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청와대 접근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고 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리돼야 한다. 대한민국 권력 서열 1위 대통령의 집무실이자 거처이기 때문이다. 최상위 보안시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순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10여가지의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가 거주하고 공모 범죄가 이뤄진 것으로 지목되는 중요 장소다. ‘억울하다’면 혐의를 벗기 위해서라도 협조가 필요할 것 같은데 청와대는 대한민국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을 거부하고 특검의 대면조사도 ‘얄팍한’ 핑계로 차일피일이다.

그동안 검찰과 특검이 밝혀낸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과 직권남용·공무상 비밀 누설 등의 혐의는 추측이 아니다. 이미 최순실씨 등의 공소장에 적시된 것들이다. 검찰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는 표현을 쓸 정도다.

박 대통령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관련 400억 원대 삼성 뇌물 수수, 미르·K스포츠재단에 800억원 가까이 대기업 출연금 강제 출연,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 등을 받고 있다. 헌법 위반과 관련,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도 구속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등과 공모한 것으로 공소장에 적시돼 있다.

이처럼 혐의도 차고 넘치는 데 청와대는 ‘모르쇠’다. 청와대는 지난 3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압수수색을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압수수색 거부는 지난해 10월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이어 두 번째다.

청와대의 방어 근거는 형사소송법 110조 등이다. 110조1항은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수색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가 아니면 승낙해야 한다’는 110조2항 등에 따라 압수·수색이 가능할 수도 있다.

청와대가 비겁해 보인다. 진실 밝히기를 거부하고 형사소송법 뒤에 숨어 버렸다. 죄가 없음을 주장하기보다 죄를 감추기에 급급한 것 같다. 압수수색 거부는 진실 규명을 위한 수사에 대한 철저한 협조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혐의에 대해 떳떳하지 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국민들에게 법치를 말해 왔을까. 검찰과 경찰에 ‘무슨 염치로’ 범죄자를 잡아다 죄를 추궁하라고 했는지.

어불성설이다. 대통령의 옆에서 보좌하는 사람들도 그야말로 ‘도찐개찐’이다. 잘못이 없다면 형사소송법과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들이댈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압수수색 영장 집행에 협조해야 한다.

청와대 사람들이 지켜야할 것은 ‘피의자’로 적시된 박근혜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대통령일지라도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묻고, 없다면 굳건히 지켜주는 게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수사에 적극적인 협조가 우선이다. 그런데 거꾸로다.

형사소송법 110조의 ‘군사상 기밀 장소’에도 이의가 있다. 청와대는 ‘민간인’ 최순실이 제집 드나들 듯한 곳이다. 그곳을 대한민국 특검팀이, 그것도 대한민국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갖고 집행하겠다는 압수수색을 막고 있다. 최소한 이번만은 이유가 궁색하다. 경계 중인 비무장지대 출입을 대한민국 군인은 ‘기밀을 이유로’ 막고 민간인은 허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9일 대면조사 거부 이유도 말이 되지 않는다. 대면조사 일정이 사전에 유출되고 안되고가 무슨 상관인가. 지나고 나면 어차피 알려질 거였다.

무죄추정의 원칙, 좋다. ‘무죄’라는 입장에서 보면 압수수색이니 대면조사니 기분이 나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게 싫으면 피의자든 참고인 신분이든 법에 걸릴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지 못해 법에서 문제를 삼으면 법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그래서 사실을 규명, 잘못이 있으면 벌을 받자는 게 우리 사회가 약속한 법이다. 박 대통령과 그 대리인들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혐의 관련 압수수색과 대면 조사를 거부하면서 무죄 주장을 한다면 어린애도 웃을 일이다.

일반 잡범들도 이보다는 낫다. 버티다가도 수사에 응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 그리고 ‘비겁하지 않게’ 죄 값을 치른다. 쿨 하게 수사에 협조, 털 것은 털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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