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 ‘워터게이트’로 끝내 몰락
브라질 호세프도 ‘부패 덫’ 걸려
혐의 부인하다 결국 民心에 굴복

헌재에 파면 당한 朴 전 대통령
국민여론 외면 사실상 ‘불복선언’
‘국론분열 종식·대통합’ 물 건너가

끝내 승복(承服)하지 않았다. 아니 ‘불복선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로부터 파면을 당한 후 침묵을 지켰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저(私邸)로 복귀한 12일 드디어 운을 뗐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에 의하면 박 전 대통령은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헌재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불복(不服) 선언으로, 향후 정치권 등에 일대 파란을 몰고 올 전망이다.

지난 10일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 후 정치권을 비롯한 대다수 국민들은 박 전 대통령이 ‘국론분열 종식과 국민 대통합’을 위해 용단을 내려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허황된 꿈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오기(傲氣)와 불통(不通)’은 여전했다. 이 나라의 미래나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탄핵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세계 정상들은 의외로 많다. 그 중에서도 ‘워터게이트사건’으로 하야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어 탄핵당한 ‘브라질 최초 여성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성난 민심에 굴복 결국 권좌(權座)를 내려놨지만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결과는 달랐다.

닉슨의 몰락은 1972년 6월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입주한 워싱턴DC 워터게이트 호텔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던 5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된 게 시작이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WP)가 범인에게서 백악관 보좌관의 연락처와 수표가 나왔다고 보도했으나 그리 큰 파장은 없었다. 사건은 단순 침입 사건으로 무마되고 닉슨은 그해 11월 재선(再選)에 성공했다.

상황은 백악관 보좌관 알렉산더 버터필드가 수사 방해를 지시하는 닉슨의 육성이 녹음된 테이프가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급변했다. 그럼에도 불구 닉슨은 ‘국가안보’를 내세워 특검의 테이프 제출 요구를 거부했고 오히려 특검을 해임하라며 검찰 길들이기에 나섰다.

이에 법무장관과 차관은 대통령의 지시에 사임(辭任)으로 맞섰다. 이른바 ‘토요일 밤의 대학살’로 기록된 항명이었다. 측근의 폭로는 한국의 탄핵 과정과 닮으면서도, 올곧은 각료가 있었다는 점은 우리와 다른 상황이다.

미 국민들이 분노한 것은 ‘도청 자체보다 거짓말’로 일관한 닉슨의 태도였다. 마침내 연방대법원은 닉슨에게 테이프 원본 제출을 요구했다. 하원에 이어 상원도 사법방해와 권력남용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했다. 국민에게 거짓 해명을 하고 혐의 덮기에만 급급했던 결과였다.

결국 닉슨은 탄핵 확정 직전인 1974년 8월9일 하야(下野)하기에 이른다. 비록 탄핵은 면했지만 미국 역사상 임기 도중에 처음으로 사임한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았다.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은 좌파 무장 게릴라 출신으로 대통령에 오른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이다. 브라질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며 재선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경제 부패와 정부회계법 위반 혐의 등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제난에 시달리던 국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퇴진을 요구했으나 호세프는 혐의를 부인하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야당이 지난해 9월 탄핵안을 제출하고 연방회계법원이 재정회계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음에도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지지자들이 탄핵 반대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호세프는 탄핵 시도를 ‘쿠데타’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이에 국민들의 시위는 더욱 확산됐고 탄핵이 최종 확정되며 호세프는 결국 손을 들었다. 이 와중에 남미의 맹주(盟主)였던 브라질은 깊고 깊은 수렁에 빠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닉슨보다는 호세프를 더 닮았다. 첫 여성 대통령이란 공통점에다 측근들의 비리 및 지지자들의 탄핵 반대 시위, 국민적 여론은 무시한 채 상대방에 대해 물러서지 않고 정면승부를 벌이는 오기에 이르기까지 공교로울 정도다.

국민 80% 이상이 찬성하는 헌재 판결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은 사실상의 ‘불복선언’을 했다. 이는 우리의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정치권의 평가처럼 자신의 명예나 정치적 재기만을 중시할 뿐, 전직 국가원수로서 도탄에 빠진 국가와 국민들을 위하는 ‘우국충정(憂國衷情)’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헌재가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헌법수호 의지가 없다”며 탄핵을 인용해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罷免)한 이유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불복을 택한 ‘박근혜의 길’이 어떤 종착점에 이를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기만 하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