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공자, 탈레스가 예찬한 ‘물’
때론 ‘배’ 뒤집는 풍랑도 일으켜
백성의 분노가 대통령 탄핵 파면

검찰 포토라인 서게 된 ‘朴의 운명’
현재 ‘물 위’를 걷는 대선 주자들
기고만장 말고 보다 겸손해져야

일찍이 ‘물’을 예찬한 이는 다름 아닌 노자(老子)였다. 그는 「도덕경」에서 물의 좋음을 이렇게 쓰고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온갖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뭇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도 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道)에 가깝다. 살 때는 물처럼 땅을 좋게 하고, 마음을 쓸 때는 물처럼 그윽함을 좋게 하고, 사람을 사귈 때는 물처럼 어짐을 좋게 하라.”

노자의 ‘물 예찬(禮讚)’은 계속 이어진다. “말할 때는 물처럼 믿음을 좋게 하고, 다스릴 때는 물처럼 다스림을 좋게 하고, 일할 때는 물처럼 능함을 좋게 하고, 움직일 때는 물처럼 때를 좋게 하여라. 대저 오로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없도다.”

위대한 스승인 공자(孔子)도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고 설파했다. 물은 지혜, 즉 철학과도 상통한다. 서양 철학의 원조(元祖)격인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외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좋은 물은 다른 성질도 내포하고 있다. 지난해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군주민수(君舟民水)’는 대표적인 사례다. 순자(荀子) 왕제(王制) 편에 나오는 이 말은 ‘백성은 물, 임금은 배다.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도 하지만, 그 강물(백성)이 화가 나면 배(임금)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12월 9일 찬성 234표로 가결됐으니, 이 결과가 어느 정도 사자성어 선정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전국을 불태웠던 ‘촛불민심’도 한몫을 거들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최종 결과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罷免)’이었다.

헌재는 지난 3월 10일 오전 11시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 재판에서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박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대통령 탄핵심판은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지만, 현직 대통령이 파면된 것은 처음이다.

이날 선고문을 읽어 내려가는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목소리는 다소 떨렸으나 결연한 의지가 묻어났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하고,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해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최서원(최순실)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고밝혔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행위는 최순실의 사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시(判示)였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규명에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검찰조사 및 특검조사에 협조하지 않았고 청와대 압수수색도 거부했다고지적했다.

헌재의 결론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박 대통령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어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며 “결국 대통령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행위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정(憲政)사상 첫 현직 대통령 파면은 이렇게 이뤄졌다. 그 저변엔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는다는 ‘군주민수의 힘’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21일) 오전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검찰에 출석하며 포토라인에 서게 됐다.

지금 세간의 관심은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박 전 대통령이 육성(肉聲)으로 어떤 소회나 입장을 밝힐 것인지에 쏠리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오는 5월 9일 치러질 ‘장미 대선(大選)’ 판세도 다소 출렁일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론 김수남 검찰총장이 자신을 임명한 박 전 대통령의 신병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현재 김 총장은 조사 후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깊게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부 또한 전직 대통령이란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법 앞의 평등’ 원칙을 위해 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우세한 편이라고 한다.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작금의 상황에 처했다. 현재 대권(大權)을 향해 뛰는 사람들은 ‘물 위’를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물은 비가 많이 내려도 넘치지만, 바람이 불어 폭풍으로 변하면 거센 풍랑(風浪)을 일으킬 수도 있다.

때문에 대선 주자들은 순간의 현실에 기고만장하지 말고 보다 겸손해져야 한다. 그것이 ‘물’이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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