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 개정 민주당 의원입법
‘약속 뒤집기’로 결국 무산
선거구 재획정 등 ‘발등의 불’로

도·의회마저 ‘폭탄’ 떠넘기기
“무책임·몰염치 극치” 비난 빗발
내년 도의원 선거 안갯속으로…

 

2018년 ‘6.13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오는 18일이면 D-300일을 맞는다. 선거에서 10개월이란 기간은 결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다. 수면 위로 드러나진 않고 있지만 물밑에선 ‘소리 없는 전쟁’이 벌써 벌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단체장(도지사)에 국한될 뿐, 도의원 선거는 아직 어떻게 치를 것인지에 대한 기본 룰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최근 정치권의 최대 이슈로 부각된 ‘선거구재획정’ 문제는 단적인 예다.

발단은 2007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헌재(憲裁)는 지방의원 선거구를 평균인구수 대비 상하 60% 편차를 유지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도의원 선거구의 경우 최대-최소 선거구 인구편차 4대 1의 기준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해당 선거는 ‘위헌(違憲)’이 된다.

이 기준에 의거해 헌재가 정한 인구상한선(3만5779명)을 초과하는 도내 지역구는 올해 6월말 기준 제9선거구(삼양·봉개·아라동, 5만4535명)와 제6선거구(삼도1·삼도·오라동, 3만6389명) 두 곳이다. 제주도가 지난해 12월 도선거구획정위원회(위원장 강창식)를 출범시켜 이 문제를 다루도록 한 이유다.

도선거구획정위는 그동안 주민의견을 수렴하고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5월 아라동과 오라동을 독립선거구(도의원 2명 증원)로 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내놨다. 그러나 이 안은 7월12일 원희룡 지사와 신관홍 도의장, 강창일·오영훈 국회의원 등 이른바 ‘3자 회동’에서 일방적으로 폐기됐다.

그 대신 보다 광범위한 도민 여론조사를 통해 그 어떤 결과가 나오든 국회의원들이 책임져 제주특별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너무나 호언장담했기에 이게 ‘파국의 서막(序幕)’이 될 줄은 당시엔아무도 몰랐다.

사단이 터진 것은 이달 7일 오영훈 국회의원이 느닷없이 기자회견을 갖고 ‘비례대표 축소’를 담은 특별법 개정 문제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오 의원은 “정치적 신념과 가치가 다르더라도 약속대로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당의 정치적 방향과 소속 의원들의 부정적 의견으로 입법 작업을 중단키로 했다”고 변명을 늘어놨다.

그러면서 향후 책임을 원희룡 지사에게 떠넘겼다. 현실적으로 의원입법은 힘드니 정부입법으로 하든, 선거구획정위를 재가동 하든지 제주도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분권형 헌법 개정’을 이유로 ‘행정시장 직선제’에 딴지를 걸고, 선거구획정위의 권고안마저 폐기시켜 놓고선 이제 와서 ‘나 몰라라’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뻔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을 떠넘겨 받은 제주도의 행태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도는 유종성 자치행정국장을 내세워 “정부입법 등을 검토했으나 시일이 촉박해 어렵다고 판단, 도선거구획정위를 통해 현재의 29개 선거구 재획정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회의원으로부터 떠안은 ‘폭탄’을 선거구획정위에 다시 떠넘긴 것이다.

‘3자 회동’의 한 축인 신관홍 제주도의회 의장도 “참담하다”고 토로하며 변명으로 일관했다. “3자가 합의했다고 하지만 당초 도와 국회의원들이 먼저 협의했다. 이후 의회에 찾아와 여론조사 결과대로 입법발의를 하겠다고 해서 일이 진행됐다”고 둘러대기에 바빴다.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및 도의장은 제주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책임지기는 고사하고 상대방에게 떠넘기는데 여념이 없다. 그야말로 ‘무책임(無責任)과 몰염치(沒廉恥)의 극치’로, 이를 지켜보는 도민들만 실로 참담할 따름이다.

제주특별법 개정을 통한 해법 모색이 사실상 물 건너 간 상태에서 이제 남은 것은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위헌’을 무릅쓰고 기존대로 선거를 치르는 것. 또 다른 방안은 현재의 29개 선거구를 선거구획정위가 전면 재조정하는 것이다.

설혹 자신들의 권고안이 일방 폐기되는 수모까지 당한 선거구획정위가 이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선거구 재획정’은 난제 중의 난제다. 헌재가 정한 인구하한선(8945명)에 저촉되는 지역구가 단 한 곳도 없는 상황에서 선거구 통·폐합을 밀어붙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지역 정치권의 분석이다.

무책임 정치로 인해 지방의원 선거는 지금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상태다. 하지만 이 문제로 도민들이 더 이상 골머리를 앓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 박 터지는 싸움을 해야 할 이들은 선량한 도민이 아니라, 결국 정치적 욕망에 사로잡힌 정치꾼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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