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개소음 사정 들어보니 ‘공감’
역지사지 ‘오해에서 이해’ 문제 해결

아파트생활을 마감하고 시작한 전원생활은 삶에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행복도 잠시 문제가 찾아왔다.

개를 10마리 이상 키우는 이웃집에서 발생하는 개소음 때문에 밤잠을 설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갈등이 생겼다. 참다못해 필자는 물론이거니와 주변이웃들이 찾아가 항의하는 소동이 있었고, 그래도 문제해결이 되지 않아 행정에 민원까지 제기하게 됐다. 행정에서는 “현행법으로는 강제할 수 있는 사안이 되지 못한다”며 이웃 간에 원만한 합의를 보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개주인은 7월까지 처리하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8월이 지나도록 소음은 여전했다. 개주인을 만나 대화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 같아 포기하고 귀마개와 한여름 문을 꼭 닫고 사는 것으로 소음을 이겨보고자 했으나 개짖는 소음은 참지 못할 고통이었다.

반드시 해결해보겠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개주인을 찾아갔다. 이번엔 감정을 억누르고 무조건 듣기만 했다. 개주인은 행정에서 여러번 찾아온 것과 자신을 마치 몰염치한 사람으로 취급한 것이 억울하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편안하게 개를 키우면서 살았는데 나중에 이주해온 주민들이 되레 ‘원주민’ 행세를 하는 것 같아 싫었다고 했다. 개는 원래 1마리만 키웠는데 유기견들이 찾아온 것을 밥도 주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끼도 낳아 13마리까지 늘었다고 했다. 사료비 지출도 많고 이웃에게 미안한 마음에 유기견센터며 개장수에게 전화도 해보았지만 쉽게 처리되지 않아 무척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다.

예상 못한 사연에 깊은 공감을 표하고 개소음으로 인해 이웃들에게 욕을 먹는 것이 너무 딱하다는 말을 전했다. 개주인은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겠다고 약속했고 현재는 4마리만 키우며 이렇게 사건은 일단락됐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발단은 서로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됐다. 개주인을 몰염치한 사람으로 치부하여 감정적으로 대하고 합의점을 찾기 위한 대화보다는 행정기관에 민원을 제기하여 강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 단초였다.

또한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입장만을 전달한 것도 문제였다. 개주인은 자신이 평소 누리던 생활을 침해 받는 것도 억울했을 것이고, 개를 키우는 상황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오해받은 것도 억울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서로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려는 대화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진작 격앙된 감정을 내려놓고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했다면 오해는 없었을 것이고 이해의 바탕 위에 문제는 훨씬 쉽게 해결됐을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자신의 선입견과 태도로 인한 오해와 그로 인한 상한 마음과 감정으로 반목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죽하면 파스칼조차 “오해는 너무 쉽고 이해는 너무 어렵다”라는 말을 했겠는가.

이해와 오해는 첫 한 글자가 다를 뿐이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오해’가 생기면 어긋나게 돼 있고, 정말 어려운 문제도 서로를 ‘이해’하면 쉽게 해결되기도 한다. 이해는 언제나 늦게 찾아오고 오해는 상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며 이해는 상대를 알고자 한걸음 더 다가서는 선의에서 비롯된다.

“똑같은 생각과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생각(insanity)은 없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다른 결과를 이끌기 위해서는 오해에서 이해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자기주장을 내려놓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오해는 쉽게 풀릴 것이다.

진정한 소통은 이해를 높이고 오해를 줄일 수 있다. 오해에서 이해로 가는 길은 지극히 어렵지만 이해의 편에 서서 노력한다면 그 간극은 줄어들 것이고 결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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