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통한 지방분권 추진 급물살
‘제주특별자치도 분권모델의 완성’
文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돼

정책연구 활발하지만 자치역량 의문
선거구획정·행정체계개편 주체 망각
지역 국회의원에 휘둘려 무산 ‘실망’

 

문재인 정부 들어 지방분권 추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는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국가를 만들기 위한 균형발전 정책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28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 주재 행정안전부, 법무부, 국민권익위원회 핵심정책토의에서 이같이 보고했다. 행안부는 이날 전국이 골고루 잘사는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위해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 초석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개헌을 통해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 국가 만들기를 약속했다. 후보 시절에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곧바로 개헌작업에 착수하겠다”며 “제주도와 세종시를 연방제수준으로 하겠다”고 밝힌 바도 있다. 저변에는 돈과 사람, 권력, 문화, 교육 등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과도하게 쏠리는 기형적 형태의 ‘서울 공화국’으로는 더 이상 나라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렸다.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그동안 지방분권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제주만 하더라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당시 정부는 외교·국방 분야를 제외하고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겠다고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는 그러나 허언으로 끝났다. 재정권 등 자치행정을 실현할 실질적 권한 이양은 시늉에 그쳤다. 중앙정부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 했다. 강고한 중앙집권적 질서 앞서 특별자치도는 ‘허명의 문서’로 전락했다.

지역의 경쟁력 강화와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지방 행정이 중앙 예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해선 지방분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문 대통령이 내년 지방선거 전 개헌을 약속한 만큼 이번 기회에 지방분권 개헌을 통해 정상적 국가 운영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 분권모델의 완성’이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제주에서는 지방분권 실현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제주도정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연방제 수준의 제주특별자치도 자치분권 모델 완성을 위한 사업에 착수했다. 제주대와 한국법제연수원 등 4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통해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 확보를 위한 제주특별자치도의 헌법적 지위 확보 △자치분권 실행을 위한 제주특별법 개정 △안정적 재원확충을 위한 국세 이양 △면세특례제도 확대 등 제주특별자치도 완성을 위한 제도·정책을 공동으로 모색할 방침이다.

그런데 제주가 과연 연방제 수준의 자치권을 운용할 역량을 가졌을까. 단적으로 도의원 선거구 획정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자치분권 운운해도 되나 싶다.

제주도선거구획정위원회는 수개월간의 논의 끝에 지난 2월 도의원 정수 2명 증원(41명→43명) 등의 권고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도지사와 지역 국회의원, 도의장이 획정위와 협의도 없이 여론조사를 통해 대안을 선택키로 합의했다. 여론조사 결과가 ‘비례대표 축소’로 나와 시민단체 등이 반발하자 증원 방안을 주도했던 지역 국회의원들이 발을 빼 특별법 개정 추진을 포기했다. 제주도와 도의회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됐다.

이에 제주도는 선거구 재조정을 추진하려 했으나 이번엔 획정위원들이 권고안 일방 폐기 등 을 문제 삼으며 전원 사퇴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구 획정이 안갯속에 빠졌다.

행정체제 개편 논의과정에서도 자치 측면에서 실망스러운 면이 노정됐다. 도행정체제개편위원회는 지난 6월 29일 행정시장 직선제를 비롯해 현행 2개 행정시 권역을 4개 권역으로 조정할 것을 도에 최종 권고했다.

하지만 이 역시 도지사-국회의원-도의장 3자 합의로 무력화됐다. 수개월에 걸친 논의 끝에 결정된 사안을 국회의원 말 한마디에 포기하고 만 것이다. 제주도는 내년 지방선거에 행정시장 직선제를 도입할 수 없다고 공식 선언했다.

도무지 자치 역량을 가졌다고 볼 수 없는 장면이 잇따라 연출됐다. 일련의 사태는 지역의 일을 주체적으로 풀어야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망각하고 중앙정치에 휘둘려 빚어진 결과다. 도정과 의정 모두 자치 역량과 철학이 의심된다. 자치분권 확보도 좋지만 이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앞서 자치 역량을 먼저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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