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적폐청산 선언
‘비정상의 정상화’ 바로잡기 바람직
지록위마 ‘간신나라 충신’ 문제

한 줌 권력 위해 국민 가슴에 대못
색출 처벌해 교훈 삼아야
의욕 지나친 ‘지록위장’은 경계해야

 

적폐청산, 문재인 정부의 최대 화두 가운데 하나다. 적폐(積弊)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말한다. 그래서 적폐청산은 ‘새 술은 새 부대에’와 목적은 일맥상통한다. “앞으로 잘해 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시제(時制)가 180도 다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는 현재부터 미래의 일인 반면 적폐청산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일이다. 그래서 적폐청산은 미래를 지향하는 ‘새 술은 새 부대에’를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진상규명을 통한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개선 없는 미래는 사상누각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노력은 바람직하다. 특히 새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로 국정농단 사태 속에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의 탄핵사태에 이어 탄생한 만큼 ‘정상의 정상화’를 위해서도 적폐청산은 반드시 수행해야할 과제이기도 하다.

사실 과거 정권에 빌붙어, 한 줌의 권력을 영위하고 연장해보고자 사슴을 말이라고 서슴지 않으며 ‘비정상의 정상화’에 앞장섰던 이들이 없지 않았다. 국민들이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고 외치는 데도 집권자가 말(馬)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면 사슴인줄 알면서도 “말(馬)이 맞다”고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열창(熱唱)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구치소로 사실상 직행하게 만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나 문화계블랙리스트 사건도 지록위마의 결과물이다. 아울러 피워보지도 못한 꽃들이 세월호 사태로 무수히 꺾였어도 진상규명조차 이뤄지지 못했던 일이나, 원세훈 국정원장(재임 당시)의 댓글부대를 이용한 국정원의 정치개입 등 청산해야할 적폐의 ‘후보’들이 결코 적지가 않다.

진상규명을 통해,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외치며 국가를 외면하고 국민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던 사람들은 처벌해야 한다.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간신나라 충신들이 설쳐돼선 안될 일이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죄는 미워도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과 인간이 인간에 대해 사형 등의 ‘벌(罰)’을 내릴 수 있느냐는 물음표에도 불구하고 벌을 내리는 이유는 잘못의 반복을 막기 위함이다. 우리와 같은 사회의 룰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우리와 격리시키는 의미와 함께 다른 사람들에겐 일벌백계의 교훈이 된다.

국민들이 원하는 국가의 룰에서 행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벌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이 정부 들어 그 위치에 올라선 사람들에게도 반면교사가 된다.

그리고 “간신나라 충신들이 말이라고 우겼던 사슴은 사슴이었다”는 공식기록도 반드시 남겨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당연한 명제가 실현돼야 지록위마의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다. 적폐 청산의 당위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야당에선 탄압이나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고 있다.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 현재 거론되는 적폐들이 사실이라면,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사슴을 말이라고 얘기하며 국정을 위태롭게 했던 이들과 다를 바 없다고 본다.

그러고 보면 자유한국당 등 ‘직전의 여당’ 세력도 적폐청산 작업을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떳떳하다면 말이다. 당시 여당에서 말이라고 했던 게 사슴이 아니라 진짜 말이었으면, 즉 지마위마(指馬爲馬)로 잘못이 없으니 현 정부의 이른바 적폐청산 작업이 가소롭기까지 할 것이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있는 것처럼 설쳐대는 형국일 것이다.

‘지록위마’가 맞는지 ‘지마위마’가 맞는지 진실은 밝혀야 한다. 그래서 간신나라 충신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는 교훈으로 삼던 지, 아니면 멀쩡한 정치행위를 앞선 정부의 것이라고 무조건 부정하게 치부하는 저급한 정치행위를 근절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언제든 사슴은 사슴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정부에선 ‘지록위마’를 외친 인물들에 대한 적폐 청산의 불행이 되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도 명심할 게 있다. 말이라고 불리던 동물을 사슴으로 바로 잡는 것까지만 해야 한다. 의욕이 지나쳐 사슴을 ‘노루(獐)’나 ‘고라니’로까지 발전시키지 말라는 주문이다. 지록위마를 바로 잡으려다 ‘지록위장(指鹿爲獐’)의 우를 범하는 죄가 더 클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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