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死後 분열 직면한 중국
덩샤오핑 ‘공7, 과3’ 논리로 극복
‘실사구시’ 바탕 ‘세계兩强’ 우뚝

‘적폐청산 회오리’ 휩싸인 한국
최악 안보위기 속 과거로 회귀
우리도 ‘담대한 결단’ 내려야

 

 

지난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하자 중국에서는 마오에 대한 격하(格下)운동이 일어날 징후가 보였다. 이는 곧 중국(공산당)의 분열을 뜻했다. 이때 나선 이가 바로 ‘작은 거인’이라 불리는 덩샤오핑(鄧小平)이었다.

그는 공칠과삼(功七過三)의 논리를 내세워 불붙기 시작하려던 격하운동을 잠재웠다. 마오의 과오가 있다고는 하나 ‘공이 7이고 과는 3’으로, 그간의 공적이 다른 허물을 덮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 당시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주자파(走資派)로 낙인이 찍혀 큰 고초를 겪은 바 있다. 하지만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나라의 장래부터 먼저 생각했다.

‘종이 호랑이’던 중국이 오늘에 이르러 미국과 함께 명실상부한 세계 양강(兩强)으로 어깨를 겨루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사망 후 불과 2년 만에 중국 대륙을 장악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등 인민을 설득하는 능력이 탁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바탕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1978년 중국의 실권(實權)을 거머잡은 뒤 이른바 ‘흑묘백묘(黑描白描)’론을 내세웠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아랫목이 따뜻해지면 윗목도 따뜻해진다는 선부론(先富論)을 설파하면서 개혁 및 개방의 시동을 걸었다. ‘선부론’은 먼저 부자가 되어야 나누어줄 것도 생긴다는 것으로, 공산당으로선 파격적인 분배보다 성장을 앞세웠다.

덩샤오핑의 진가는 그가 내세운 ‘삼보주(三步走) 운동’에서 빛났다. 허황된 구호보다는 우선 실리를 챙기는데 주력했다. 제1보는 온포(溫飽)였다. ‘따스한 음식을 배불리 먹는다’는 뜻으로, 이는 인민이 먹고 입는 문제부터 해결한다는 목표다.

제2보는 ‘생활을 편안하게 한다’는 소강(小康). 중국 인민의 생활을 중류 정도로 이끌어 올리는 것이 목표였다. 뒤를 이은 제3보는 대동(大同)으로 ‘크게 발전하여 모두가 잘사는 사회’로 중국의 현대화를 이룩하겠다는 포부다.

오늘의 눈부신 성장과 막강한 힘을 가진 중국을 만든 원동력은 이 같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것은 ‘빛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결정체였다. 과거를 부정하고 그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나라의 미래를 지향한 걸출한 지도자의 결단이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017년 10월, 대한민국은 사상 최장의 추석 연휴 속에서도 ‘적폐청산’ 회오리로 어수선하다. 적폐(積幣)의 사전적 의미는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을 말한다. 그러한 폐단이 있다면 말끔히 청산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그 화살이 온통 전전(前前) 정권인 이명박 전 대통령(MB)에게 쏠리면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적폐청산의 경우 검찰 등에 맡겨 조용히 지켜보면 될 것을,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볼썽사나운 모습이 전개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은 “이명박 정권은 사찰공화국에 이어 공작(工作)공화국”이라며 날선 공세를 펴고 있다. 당시 MB 청와대가 중심이 되어 전방위적으로 이뤄진 야당사찰, 관권선거, 언론·문화계 탄압은 민주주의 국가라면 상상하지 못할 일이라고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MB 측의 반발엔 “범죄행위를 덮는 것은 퇴행이 아니며 이를 묵인하는 것이 국익을 해치는 것이고,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범죄를 옹호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 야권도 반격에 나섰다. 홍 대표는 “최근 여권에서 검찰을 앞세워 벌이는 MB 정부에 대한 수사는 노무현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 쇼에 불과하다”며 “최악의 안보위기 속 앞선 정권의 공과는 역사의 판단에 맡기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국민을 위한 정부는 될 수 없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급기야 전선(戰線)은 노무현 정권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진흙탕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직도 이념과 진영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진보든 보수든 늘 앞 시대의 계승은 고사하고 단절을 시도하는데 급급했다. 미(美)가 있으면 추(醜)도 있고, 공(功)과 함께 과(過)도 있게 마련이다. 때문에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냉정하게 평가해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과거에만 매달리면 미래는 기약할 수가 없다. 이제 우리도 중국처럼 담대하게 ‘공칠과삼’의 지혜를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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