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족’ 선언까지 했던 친노 세력
盧 서거 이후 반전계기 마련
문재인 대통령 당선 ‘화려한 부활’

국정농단·탄핵 등 ‘보수 대몰락’
반성커녕 진흙탕 싸움만
죽기 주저하는 게 ‘保守의 비극’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친노 폐족’ 발언을 한 것은 지난 2007년 12월 26일이었다. 그해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정동영)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참패한 직후다.

“친노(親盧)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廢族)입니다.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민주개혁세력이라 칭해져 왔던 우리 세력이 우리 대에 이르러 사실상 사분오열, 지리멸렬의 결말을 보게 했으니 우리가 어찌 이 책임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노력이 국민과 우리 세력 다수의 합의와 지지를 얻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변화와 개혁에 실패했습니다.”

‘폐족’은 왕조 시대 조상이 형(刑)을 받고 죽어서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족속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후 친노는 두문불출, 절치부심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친노 세력도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2009년 5월 23일, 퇴임 후 검찰의 조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자살)은 분위기 반전(反轉)의 기폭제가 됐다. 그동안 숨죽였던 친노 세력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일어섰다. 안희정 본인도 2010년 7월의 지방선거에서 충남도지사직을 거머쥔 후, 2014년 연임까지 성공하며 대권(大權) 후보 반열에도 오른 바 있다.

그리고 2017년 5월 9일에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친노 세력은 완전히 부활했다. ‘친노 폐족’을 선언한지 꼭 10년 만의 일이다.

올해 5월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못다 이룬 꿈을 기필코 완성하겠다”며 ‘정권교체 신고식’을 가졌다. 특히 추도식이 열린 이날은 국정농단 등으로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첫 공식 재판을 받는 날이기도 했다. 그것은 ‘보수의 대몰락을 상징하는 것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보수 세력의 몰락(沒落)은 지난 2015년 6월 ‘유승민 내치기’에서 이미 예견됐다. 박 전 대통령이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든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총무를 겨냥해 ‘배신(背信)의 정치’라는 낙인을 찍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도는 곧 드러났다. 다음해 4월의 총선을 앞두고 사사건건 맞서는 비박(非朴)계인 김무성 당 대표 등을 모두 축출하려는 게 속셈이었다. 이한구 의원이 공천위원장이란 칼자루를 잡으며 이는 현실로 드러났다. 여기에 친박의 중심인물이자 ‘진박(眞朴) 감별사를 자처한 최경환을 비롯해 서청원·윤상현 의원 등이 가세했다.

상식을 초월한 친박 세력의 횡포는 ‘여권의 심장부’인 TK는 물론 수도권의 민심마저 등을 돌리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그 결과 2016년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참패(慘敗)했다. 야권이 분열된 상태에서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를 진 것이다. 원내 제1당의 자리도 더불어민주당에 내줬다. 새누리당으로선 상상조차 하기 싫던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16년 만에 형성된 것이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국민들이 매서운 회초리를 들어 냉엄한 심판을 내렸으면,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대오각성하고 환골탈태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오기와 독선의 ‘불통(不通) 리더십’은 계속됐고 ‘분당(分黨)’으로 이어졌다.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이 드러나며 박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의결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랐고, 헌재가 내린 판결은 결국 ‘대통령 파면’이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70% 선을 넘나드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로 현 야권인 보수 세력은 존재감이 사라진 상태다. 홍준표의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그림자’를 지우려고 친박 출당 조치까지 내렸지만 서청원·최경환 의원이 거세게 반발하며 이내 ‘진흙탕싸움’으로 비화됐다.

바른정당 또한 자강파와 통합파로 갈려 허우적대는 것은 마찬가지다. 아직도 ‘보수(保守)의 가치’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염치 등은 눈을 씻어도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진보 세력은 ‘친노 폐족’까지 선언하며 숨죽여 기다린 끝에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보수의 경우 통절(痛切)한 반성은커녕 노욕을 드러내며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다. 역시 ‘수구 꼴통’이라는 비아냥도 그래서 나온다.

철저하게 죽어야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이 평범한 진리를 그들만 모르고 있는 게 보수의 비극(悲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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