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 어렵게 따낸 국비 예산
‘사업 포기·목적외 사용’ 반환
도민들 “한 푼이 아쉬운데…”

관광·건설 부진 제주경제 악화
내년 많은 예산 확보 필요지만
제대로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

 

 

예산철이 다가왔다. 국회는 국정감사가 끝나면 내년 예산 심사에 돌입할 전망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전국 자치단체들은 국비 확보에 혈안이 된다. 계획하는 사업의 재원 마련을 위해서다. 단체장들은 수시로 정부 부처를 찾아 예산안 반영을 부탁하며 머리를 숙인다. 담당 공무원들은 아예 정부청사에 진을 친다. 국비확보를 놓고 지자체 간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진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이번 예산전쟁은 더 가열찰 전망이다. 예산 확보 성적이 좋지 않은 단체장은 내년 선거를 안심할 수 없다. 새해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따내기 위한 노력이 집요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생사가 그렇듯 예산 확보에도 운이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중앙 정계에 지역출신 실력자가 있는 지자체는 손쉽게 국비를 거머쥔다. 일전에 ‘예산폭탄’이란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지난 정권 박근혜 대통령 측근이었던 이정현 국회의원(전남 순천·곡성)은 2014년 7·30재보궐선거에서 “예산폭탄으로 지역발전을 10년 앞당기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당선됐다. 당시 새누리당에서 유일한 호남 의원이 됐다. 이 의원은 약 2년 후 20대 총선에서도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실제 예산폭탄 투하가 당선의 배경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도세(道勢)가 약한 제주 입장에서 예산폭탄은 부러운 얘기다.

이런 판에 애쓰게 확보한 예산을 허공에 날리기까지 하면 허탈감이 깊어진다. 3선 의원 출신으로 중앙 인맥이 탄탄한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이전 지사에 비해 굵직한 사업 예산을 제법 따오는 편이다. 일례로 2015년 제주를 방문한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건의해 제주해양쓰레기 종합처리장 건설 사업비 260억원을 확보했다.

그런데 이 사업은 없던 일이 됐다. 제주도 스스로 사업 추진을 포기했다.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환경자원순환센터가 건립되면 이 시설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제대로 된 검토 없이 사업을 추진했다는 비판에 제기됐다.

그러나 도의회 일각에서는 사업 무산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해양쓰레기는 분리수거가 어렵고 염분이 많아 일반쓰레기 처리장에서 처리가 곤란해 전문시설인 해양쓰레기 종합처리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예산을 반납하지 않고 종합처리장 건설을 추진했다면 내년 완공해 1일 40t의 해양쓰레기 처리가 가능했을 것이다. 동복순환자원센터 해양쓰레기 처리용량은 1일 22.3t 규모로 추진되고 있다. 2016년 기준 도내 해양쓰레기 수거량은 1만800t. 동복순환자원센터 시설 용량이 부족한 것이다. 도내 해양쓰레기 발생량 매년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처리 시설 추진 포기는 근시안적 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무원이 국비를 잘못 사용해 아까운 예산을 반환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감사원이 2015년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를 상대로 실시한 국고보조금 집행실태 감사결과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국고보조금 수백억원을 목적외로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제주시는 하천 재해예방사업에 투입할 국고보조금 411억5300만원 중 212억6900만원을 목적 외로 사용했고, 서귀포시도 국고보조금 114억600만원을 목적 외로 썼다가 적발됐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목적외 사용 국비 326억7500만원 반환을 요구했다. 이들 행정시는 감사원 처분이 과도하다며 지난해 3월 재심을 청구했으나 최근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한 푼이 아쉬운 데 ‘생돈’ 수백억을 그냥 돌려줘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이번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에 패할 경우 해당 국비 반환은 불가피하다.

최근 제주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도내 주력산업인 관광에 타격이 상당하다. 지역경제를 떠받치던 건설도 올해 들어 침체 국면에 있다. 이에 따라 내년 국비 사업비 확보는 어느 해보다 중요하다. 가급적 국비 예산을 많이 따 지역경제 활성화에 투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비를 ‘생으로’ 날리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면밀한 사업 계획으로 국비를 확보하고, 이를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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