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 전문가와 철새도래지 방문
저어새 관찰 흡족 불구 쓰레기
도내 주요 명소들 같은 문제 ‘몸살’

관광지에 쓰레기통 없는 제주도
생활쓰레기 투기 우려 때문
‘관광객 전용’이라도 비치할 필요

 

정부의 존재 이유는 ‘공공재의 생산’에 있다고 잘라 말할 수 있겠다. 사적(私的) 재화를 생산하는 현대나 삼성, 또는 LG와 같은 회사들에게 공공재를 맡긴다고 상상해 보라. 공적 재화는 돈을 따로 지불하지 않아도 사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은 애써 잘 만들어도 장사가 안 된다. 그러니 이들이 나설 리도 만무하지만 설혹 나선다고 해도 이들에게 이런 일을 맡길 수도 없다. 사적 이익을 우선할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좋은 법과 제도, 그리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도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환경 등은 우리가 바라는 공적 재화들인데 이것들이 사적 재화와 다른 점은 마음에 안 든다고 메이커를 쉽게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나 휴대폰, 또는 TV가 마음에 안 들면 타사 제품으로 바꾸면 되지만 정부가 하는 일이 마땅치 않다고 다른 나라 또는 다른 지방의 정부를 데려 올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란 평소에 우리가 바라는 것을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수시로 알리는 일이다.

며칠 전 세계자연보호기금(WWF)에서 방문한 전문가 몇 사람을 안내하여 하도리 철새도래지에 갔다. 멸종위기 종으로 국제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저어새는 만주 등지에서 번식을 한 후 겨울을 나기 위해 남하하는데 그 중 일부가 제주도에서 월동을 한다 하여 찾은 것이다. 오후의 석양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억새와 맑고 잔잔한 호수 면의 조화는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밥주걱 모양의 부리가 특징인 저어새도 여러 마리 관찰할 수 있어서 일행들은 매우 흡족해 했다.

그러나 나의 눈길은 호숫가 일대에 버려진 음료수 캔·플라스틱 병과 과자 포장지 등 온갖 쓰레기들로부터 떠날 수가 없었다. 문제는 여기뿐만 아니라 도내 주요 ‘명소’ 대부분이 쓰레기 몸살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시의 삼성혈 주차장에는 ‘관광객 관광기사 전용휴게소’라는 조그만 정자가 있고 그 옆에 음료수 자판기가 있는데 바닥에는 늘 많은 종이컵과 담배꽁초가 널려 있다. 삼성혈은 탐라를 창시한 삼을나(三乙那)를 기리는 곳으로서 4월과 10월에는 춘추대제, 12월에는 도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제주도지사가 초헌관이 되어 건시(乾始)대제를 봉향하는 제주도민의 성지다.

함덕 서우봉 해변에는 쓰레기 관련 안내판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 쓰레기는 규격봉투에 담아 클린하우스에 버리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종량제 봉투를 사러 마을로 들어가는 것도 불편하려니와 쓰레기 종류별로 요일이 지정되어 있고 대낮 시간에는 배출 자체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묵고 있는 숙소로 가지고 가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숙소업주들은 손님들이 다른 곳에서 가져온 쓰레기까지 치워줘야 하는 꼴이 된다.

관광객과 관광기사들을 위한 휴게소라는 곳마저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쓰레기통이 비치되어 있지 않다. 관광객들은 호텔로 가지고 간다 치자. 택시기사들은 온종일 택시 한 구석에 싣고 다녀야 하는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클린하우스 이외의 장소에 쓰레기통을 추가로 비치하면 주민들이 생활쓰레기를 거기에 버리게 될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또한 해변이나 들의 쓰레기통을 자주 비우고 관리하는데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작년에 1500만 명을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쓰레기통이라는 공공재의 생산에 있어서는 관광객의 존재를 제대로 감안하지 않았다. 제주도민도 사는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구경을 가면 관광객이 된다.

세계환경수도를 지향하는 제주도에서 이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서울 혜화동 도로변에 최근에 새로 등장한 쓰레기통은 우리에게 좋은 타산지석이라 여겨진다.

가까이에 마로니에 공원과 서울대학병원이 있어 인파가 많은 곳인데 평범한 2개의 마대자루를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품으로 구분했고 그 위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을 인쇄했다. “이곳은 관광객 전용 쓰레기통입니다. 가정이나 업소 쓰레기를 이곳에 버릴 경우 OOO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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