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충분한 삶을 살고 갔지만, 그를 충분히 알지 못했다

'참 사람' 된다는 것 무엇을 의미하나
뜻있는 삶 고민하는 이에게 답을 주다

 엔딩크레딧이 올랐다. 하지만 극장 안은 한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침묵의 시간. 그분처럼 살고자 하는 다짐의 시간이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가장 낮은 자리로 향한 그분의 삶에 대한 경의의 표현과 먹먹함이었을 터. 여운이 꽤 오래 남았다. 알 수 없는 그 여운은 그분을 닮고 싶은 또 그분처럼 살아가고 싶은 설레는 다짐의 여운이었다.

 '판자촌의 예수'로 불리는 간난한 이들의 벗 정일우(미국명 존 빈센트 데일리, 1935~2014) 신부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지난달 26일에 개봉해 잔잔한 삶의 감동을 주고 있다.

▲ 故정일우 신부(미국명 존 빈센트 데일리, 1935~2014)

△ 스물다섯 살 미국 청년, 한국 땅을 밟다

정일우 신부는 1960년 9월 예수회 신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서강대학교에서 강의하던 1972년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잡혀간 학생들을 위해 단식 투쟁과 대한민국 언론의 자유를 위한 반정부 시위를 하다 연행되기도 했다. 이후 청계천과 양평동 판자촌 빈민들과 함께 살며 빈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한국사람 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한국사람이 되었다.

그 후 88올림픽을 앞두고 곳곳에서 철거 작업이 진행되자 상계동과 목동 등지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에게 경제적 자립을 심어주고, 미사를 통한 위로를 주면서 정신적 아버지로 자리 잡았다. 1998년 귀화한 후에는 충북 괴산에 농촌 청년 자립을 돕기 위한 공동체를 만들어 농촌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정일우 신부는 1986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빈민들을 돕다가 2004년 64일간의 단식기도 중 쓰러져 병고를 치르다 2014년 6월 2일 선종했다.

 

△ 내 죽기 전 소원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신부님을 보고 예수를 닮았다 했죠. 하지만 예수의 삶을 몸소 사셨다는 표현이 더 가깝습니다” 복음을 입으로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정일우 신부는 철거민과 부랑아, 걸인과 함께 판자촌 쪽방에서 같이 생활하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빈민자들의 이야기에 진심을 다해 경청하고, 공감하며, 위로했다.

하지만 엄격한 종교 지도자의 모습이 아닌 ‘이웃’으로서 살았다. 정일우 신부는 매일같이 커피, 담배로 하루를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과 춤추고 노래하며 온동네를 잔칫날로 만들기도 하고 오늘은 또 무슨 장난을 칠까 궁리했던 개구쟁이 신부로 그렇게 울며, 웃으며 그들의 삶에 ‘진짜이웃’으로 녹아들었다.

▲ 영화 '내 친구 정일우' 스틸 이미지

△ 이 나라의 희망은 가난뱅이뿐

영화에서 정일우 신부는 미사 강론 중에 “이 나라의 희망은 가난뱅이뿐”이라는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진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철거민이 엉엉 울자 정일우 신부는 그를 안고 함께 울며 “높은 사람, 권력 있는 사람, 교육받은 사람이 이 나라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 일을 안 하기 때문에 희망이 있는 건 가난한 사람들뿐”이라며 그들의 곁을 지킨다.

우연히 정일우 신부님의 부탁으로 영상을 찍으면서 정일우 신부와 연을 맺은 김동원 감독은 기자 간담회에서 “이제 신부님이 지향하던 공동체 생활과 가난한 산동네 사람들은 사라졌다”며 “아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신부님이 추구하던 ‘가난’이 이 세상에 밝은 불빛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 하는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를 구원 할 것이다”라던 정일우 신부. 가난한 동네는 사라졌지만 가난은 더 무섭고 부끄러운 것이 되어버린 지금,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그런 삶이다.

▲ 영화 '내 친구 정일우' 스틸 이미지

 

요즘 날이 부쩍 차가워졌다. 어느새 2017년도 이제 두 달.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다. 이번 주말 “가난의 가치를 잊은 시대에 불빛이 되길” 바란다는 김동원 감독의 말처럼 참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의미 있는 삶을 고민하는 이에게 답을 주는 ‘내 친구 정일우‘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맑은 사랑 이야기를 만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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