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의 콧물 기침 오한 고열 몸살
소멸시켜야할 병증만도 아니
몸 스스로 구호요청이자 방어 기전

바이러스 배출·면역기능 강화 역할
자연도 아프면 인간에게 신호
관심 있게 살피며 사는 일도 중요

 

겨울의 초입 환절기여선지 감기 환자들이 많다. 감기에 걸리면 콧물·기침·오한·고열·몸살이 동반된다. 가끔은 의사들조차도 이런 현상들을 단순히 병의 치료를 위해 소멸시켜야 할 병증으로만 생각하지, 몸이 스스로 주인에게 보내는 구호 요청인 동시에 스스로 몸을 보호하려는 인체의 주요한 방어 기전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감기 몸살로 의사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이런 증상들을 빨리 없애주는 의사를 명의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혀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실은 적당 기간 이런 증세가 지속되는 것이 오히려 병의 근본 치료에 도움이 된다.

먼저 콧물의 역할은 몸에 번식하고 있는 바이러스 또는 세균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 병원체의 체내 개체수를 낮추는 기능이 있다. 오한이 오는 것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순간적으로 근육을 떨게 만들어 체온을 상승시킨다.

이를 통해 면역기능은 물론 여러 가지 효소와 관련된 체내 방어기전을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일을 한다. 그러므로 오한에 이어 고열이 생기면 불편이야 하겠지만 병을 앓는 환자에게 이런 과정이 없어진다면 생명을 지키는 전쟁터에서 사용할 아주 화력 좋은 무기를 잃는 셈이 된다.

실제 면역기능이 심하게 저하되어 있거나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 환자의 경우 열이 나야 할 때 열이 나지 않고 오한도 생기지 않는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중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가끔 이런 상황이 정말 위험 신호인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데서나 콜록거려야 하는 기침은 누가 보아도 가장 먼저 가라앉혀야 할 병증으로 보이지만, 대부분 질환이 악화되어 인간이 죽음에 직면하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는 모든 기력을 잃고 기침을 스스로 못하게 된다. 차오르는 가래를 뱉어내지 못하면 폐렴으로 진행,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의사인 필자도 심한 교통사고와 질환으로 병실에 누웠을 땐 3가지만 스스로 할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첫째가 기침을 시원하게 할 수 있어 기계를 쓰지 않고 가래를 스스로 뱉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내 발로 걸어 화장실로 가서 마음대로 대소변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가 스스로 숟가락을 들어 음식을 입에 넣고 치아와 턱을 움직여 마음껏 씹어 제대로 맛을 음미하며 음식을 먹어 보는 것이었다.

우리가 콧물을 흘리고 기침을 하고 병이 와 열이 나고 음식을 씹어 세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것과 대소변을 마음대로 보는 것들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기적 같은 축복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그것을 잠시라도 잃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비밀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연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여야 우주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가이아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의 몸은 자연의 일부다. 자연도 인간의 몸처럼 앓고 있으면 아프다는 신호를 인간에게 보내는 엄연한 생명체다.

우리가 딛고 사는 이 땅이 내어 놓은 많은 식물들, 우리가 매일 마셔야 살 수 있는 물, 우리가 매일 호흡하는 공기까지도 생명을 가진 자연의 일부로 인정하는 지점까지 우리의 인식이 이제 확대돼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자연에 속한 생명체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아픈 증세들을 더 예민하게 느끼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미래도 같이 지켜질 것이다.

땅과 나무의 통증, 바다와 물이 보여주는 병증들, 어느 때 보다 심하게 병들어가는 하늘, 이런 문제들이 제주라는 생명체의 건강 상태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면 조금은 서글퍼진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우리 몸 안에 생기는 암과 만성 질환만인 것 같아도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을 싸고 있는 많은 생명체들의 건강 상태도 그물처럼 인간의 생명과 한데 어우러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이라는 그 생명의 그물망이 내는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연이 인간에게 내비치는 아픈 증세를 어느 때 보다 관심 있게 살피며 사는 일이 중요해진 시대에 우리가 와 있음이 더 분명해 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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