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환경 활용한 ‘과학적’ 요소
처마 길이로 일조량 조절 ‘삶의 지혜’
차양 빗물과 햇빛막고 건물 보호

도시형 건축물서 처마·차양 홀대
우리네 전통적 여유도 실종
마을만들기 사업에라도 활용 희망

 

건축가는 건축물을 설계할 때 기능과 형태를 어떻게 할지를 고민한다. 건축물은 기본적으로 바닥·벽·지붕으로 둘러싸인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3가지 요소를 활용하여 공간을 안락하고 사용하기 편한 형태로 만들어낸다.

건축가들은 어떤 특정한 형상을 아름답다고 여겨 자신의 설계에 그 형상들을 강조해 표현한다. 그 중에서 정사각형·직사각형·원형 등 기하학의 기본 형태들을 자주 사용하며, 종종 여러 개의 형상을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건축물은 보기에도 좋아야 하지만, 사용자들이 능률적이며 편안하게 생활하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유지보수하기 용이하며, 비싼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오래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해야 한다. 좋은 건축물이 갖춰야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기능과 내구성 및 형태로 요약할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집을 지을 때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싼 재료들을 활용했다.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물리적인 상황들을 과학적 원리를 활용해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대표적인 요소가 처마와 차양이다. 처마는 기존 건축물의 일부분으로 처음 건축물 축조시부터 시공되어 지는 부분이다. 어릴 적 고향집의 마루나 방에서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처마가 있어서 가능했다.

차양은 건축물의 구조가 완성되고 나서 나중에 비막이 또는 바람이나 햇빛 가림막 형태로 단 것을 말한다. 아파트의 발코니나 전통 건축물의 수평·수직풍판 등이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건축적으로는 서로 용도와 기능이 다르면서도, 처마와 차양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설치되어졌다. 처마와 차양은 건축에 관한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들어가 있는 대표적인 건축요소인데, 처마는 계절에 따라 태양의 고도가 다른 것을 고려하여 일조량 조절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즉 처마의 길이를 이용하여 고도가 낮은 겨울에는 햇볕을 잘 받아들여 집을 따뜻하게 하며, 고도가 높은 여름에는 햇볕을 덜 받게 하여 집을 시원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아울러 빗물이 창문을 타고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도 하고, 젖은 벽면을 건조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차양은 처마 밑, 창문사이 빗물과 햇빛막이용, 외부 베란다 냉난방 절감용, 외부계단 등 모든 부위에 적절히 설치해 건축물을 보호한다. 차양은 또한 건축미학적으로도 아름답게 하는 의장적 역할도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건축물을 더 크고 더 높게 짓기 위해 계획하다보니, 과학적 원리가 녹아있는 처마의 길이는 더 짧아지고, 차양은 거의 없어지고 있다. 최근 에너지절약형 건축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적용사례가 늘어나고는 있으나, 전통식 건축물보다는 아파트나 도시형 콘크리트 주택과 같은 현대식 건축물이 많이 건설됨으로써 처마와 차양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추세다.

요즘 일부 아파트에서는 별도로 처마와 차양을 설치하기도 한다. 하지만 추후 설치로 인해 단지 전체의 이미지를 조화롭지 못하게 하는 이유로 거부당하는 사례도 보도되고 있다.

또한 현대식 도시형건축물들도 일률적인 외관과 패턴으로 인해 더욱더 삭막한 도시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에 처마와 차양의 효능을 십분 이해, 우리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며 건축물 신축이나 리모델링을 할 경우 적극 활용할 것을 권하고 싶다.

에너지 절약과 건축물 유지보수는 물론이거니와 건축물의 형태들이 정겹고 개성 있는 모습으로 바뀌어 더욱 활기찬 동네로 만들어질 것이다. 여기에다 동네들 저마다 의미 있는 색상을 가미하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처마나 차양을 설치, 과학적인 효능뿐만 아니라 우리만의 ‘여유’도 추구했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건축물은 ‘여유의 건축’이라 불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는 각박한 환경으로 인해 사람들이 여유를 잃고 건축물 또한 세태를 반영, 여유 없이 건축되고 있다. 그래서 대청마루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온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다정스러운 모습의 드라마를 보면 아련한 그리움이 더욱 깊어지는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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