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흐르는 용암이 만든 조천곶자왈
안덕·애월지역은 끈적끈적한 용암

제주도에는 사람이 출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무와 덩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고, 땅위에는 크고 작은 돌(암괴)들이 불규칙하게 흩어져 있는 지역들이 많다. 제주도에서는 이런 지역을 ‘곶자왈’이라 불러왔다. 곶자왈 지역은 돌투성이에 토양은 부족하여 농사를 짓지 못해 오래전부터 땔감을 얻거나 방목지로 이용되어 왔다.

과거에는 쓸모없이 버려진 땅으로 여겨지던 곶자왈은 최근 들어 독특하고 다양한 생태계가 유지되는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인식이 변화되고 있다. 식생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그 식생들이 광합성 활동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제주의 허파’로서, 그리고 제주의 생명수인 지하수를 함양하는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제주도 생태계의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곶자왈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곶자왈에 대한 지질학적 연구는 1990년대 초반 송시태 박사를 통해 시작됐다.

송 박사는 당시 제주도 동쪽과 서쪽을 중심으로 과거부터 곶자왈이라 불리는 곳을 조사하여 ‘곶자왈 지역의 용암층 상하부에 크고 작은 암괴들이 공통적으로 분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학계에 보고했다. 이 보고를 계기로 곶자왈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생태적 가치에 대한 중요성도 이 연구를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곶자왈과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통해 곶자왈의 중요성이 도민사회에 널리 확산되게 됐다.

곶자왈에 대한 지질학적 연구는 2010년을 기점으로 보다 다양하게 진행됐다. 연구결과 제주의 곶자왈 지역은 크게 성질이 다른 두 종류의 용암에 의해 형성되었음이 밝혀졌다.

먼저 ‘꿀처럼 끈적끈적하고 느리게 흐르는 용암’에 의해 만들어진 곶자왈이다. 대표적으로 안덕곶자왈과 애월곶자왈을 들 수 있다. 이 곶자왈 지대를 만든 용암은 끈적끈적하고 느리게 흐르는 특징으로 인해 용암의 표면은 식어 굳어지지만 내부는 여전히 뜨거운 성질을 보이며 흘러간다.

용암이 흐르는 힘에 의해 이미 굳어진 용암의 껍질은 찢어지면서 계속 전진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용암의 표면에 깨지고 각진 암석들이 분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안덕곶자왈과 애월곶자왈 지역의 암석들은 크기도 다양하고 모양도 울퉁불퉁 제각각인 특징을 보인다.

반면 ‘시럽처럼 잘 흘러가는 용암에 의해 만들어진 곶자왈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선흘곶자왈(동백동산)이 있다. 시럽 같은 용암은 끈적끈적한 용암에 비해 잘 흘러가기 때문에 넓은 지역을 완만하게 덮는 특징을 보인다.

이 용암은 두께가 얇고 빨리 식으면서 용암의 표면이 거북이 등 모양처럼 육각형으로 갈라지고 내부에는 기둥모양의 주상절리가 만들어진 특징이 있다. 이 절리들의 틈을 따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암석들이 떨어져 나와 넓은 곶자왈 지대를 만들게 된다.

따라서 시럽 같은 용암이 만든 동백동산 곶자왈 지역의 경우 암석들의 모양이 대부분 육각형을 띠는 경우가 많다. 정리하면, 지질조사를 통해 ‘곶자왈은 특정한 용암류 분포 지역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용암에 의해 형성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곶자왈을 만든 용암의 나이가 대체로 1만년 이내로 젊은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이유는 ‘최근에 분출한 용암의 경우 암석이 흙으로 변하는데 시간이 충분하지 못해 암석으로 이루어진 용암의 원지형이 그대로 남겨진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발표됐었다.  

제주도 곶자왈은 용암이 만든 유일하고 독특한 숲이라 하겠지만 하와이 섬에도 제주도와 유사한 용암숲이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제주도 곶자왈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한 용암숲을 넘어 오래전부터 사람과 제주의 자연이 함께 공존해왔던 터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번 주말에 동백동산이나 안덕·애월곶자왈을 걸으며 그곳을 만든 용암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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