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정체성 ‘조냥과 나눔’ 내걸어
26일 初演…‘성공작’ 평가
만덕, 제주 대표적 문화콘텐츠로

秋史도 ‘은광연세’ 극찬한 여장부
市예산 7억 투입 일각 논란
이제 시작일 뿐…향후 행보 주목

 

 

은광연세(恩光衍世),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퍼졌다’는 뜻이다. 제주에 유배를 왔던 추사(秋史) 김정희가 김만덕의 후손에게 써준 편액 속 글귀다. ‘나눔의 아이콘’인 의녀 김만덕의 파란만장한 삶이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18세기 제주의 실존 인물인 김만덕의 도전정신과 일대기를 극화한 뮤지컬 ‘만덕’이 지난 26일 제주아트센터에서 초연(初演)됐다. 28일까지 모두 다섯 차례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제주의 정체성인 ‘조냥과 나눔의 정신’을 잘 살렸다는 평가와 함께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뮤지컬 ‘만덕’은 제주시의 주도로 빛을 봤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고경실 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고 시장은 제주매일과의 인터뷰에서 “만덕이라는 인물을 통해 ‘나눔의 문화’가 제주의 공동체적 정신임을 내외에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만덕’ 콘텐츠를 제주의 대표 문화예술상품으로 만들어나가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번 뮤지컬 제작에는 7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일각에서 관(官) 주도로 문화사업을 발주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지만, 고 시장은 “이것이야말로 문화행정의 과제”라고 일축했다. 민간이 하기 어려운 일에 행정이 물꼬를 터주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특히 고 시장은 “학교에서는 제주민요보다 클래식을 교육하고, 곳곳에 예술 공간은 계속 세워지고 있으나 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균형 있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관광객이 많이 오고 이주민이 늘어날수록 ‘제주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만덕에 대한 고 시장의 자부심은 아주 높았다. 오만원권 지폐 주인공인 신사임당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스스럼 없이 말할 정도다.

영조가 조선을 다스리던 18세기, 김만덕(金萬德 1739~1812)은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응렬은 제주와 전라도 나주를 오가며 미역과 전복 등 제주의 특산품을 팔고 육지부의 쌀 등을 되사다 파는 중개상인이었다. 그러나 만덕이 11세가 되던 해 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사망하고, 이듬해엔 어머니 고씨마저 세상을 떴다.

이때부터 만덕의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진다. 부모 사후 외삼촌 집에서 연명하던 만덕은 퇴기인 월중선(月中仙)에게 의탁 성장하며 기적(妓籍)에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만덕은 슬기로웠다. 20살 되던 해 제주목사와 판관을 찾아가 부득이 기적에 오르게 된 사정을 탄원해 마침내 양인(良人)으로 환원된다. 이후 만덕의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만덕은 장사에 능했다. 객주(客主)를 차려 제주의 특산물을 육지에서 들어오는 옷감과 장신구, 화장품과 교환 판매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 배를 만들어 육지와 미곡을 무역했으며, 물가 변동을 잘 파악하는 놀라운 실력으로 큰 이문을 남기기도 했다.

만덕이 쉰을 넘어가던 1790~1794년 무렵 제주에 대흉년이 들었다. 100여년 만의 재변(災變)이라고 할 만큼 그 피해는 참혹했다. 제주목사(심낙수)가 2만 섬의 구휼미를 조정에 요청했고, 당시 임금이던 정조가 5000섬의 쌀을 보냈으나 수송선박 12척 중 5척이 침몰해 아주 어려운 처지에 빠진다. 이에 만덕은 전 재산을 쾌척해 배를 마련하고 육지에서 500여 석의 쌀을 사들여 구호곡(救護穀)으로 쓰게 했다. 굶주려 죽어가는 무수한 도민들을 사재를 아낌없이 털어 구원한 것이다.

이 소식은 조정에까지 전해졌다. 정조는 ‘출륙(出陸)금지령’ 등 당시의 모든 관례를 깨고, 그녀에게 ‘차비대령 행수의녀’라는 내의원 임시직책을 하사해 한양과 궁궐,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다는 만덕의 소원을 들어줬다. 1812년(순조 12) 10월, 만덕은 73세의 나이로 이 세상과 등졌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거상(巨商)이자 의인(義人)의 퇴장이었다.

제주에서 초연된 뮤지컬 ‘만덕’에는 제주 출신 배우 문희경과 뮤지컬 터줏대감인 남경주를 비롯해 김미경(프로듀서)과 김덕남(연출), 한아름(각본) 등 기라성 같은 배우와 실력파 제작진이 총출동했다. 당초의 우려에도 불구 일단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번 뮤지컬에는 “나의 마음 실은 바람아, 얼었던 내 심장을 녹여라. 두려웠고 불안했던 나의 길을 열어라”라는 명대사가 있다. 뮤지컬 ‘만덕’이 제주의 정체성을 적극 되살리는 가운데 도내 콘텐츠 진흥의 기폭제가 되고, 제주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문화예술상품으로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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