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더 먹어 달갑지 않은 어른의 ‘설’
청춘일 때가 있었는데 아쉬움
석양에서 중천의 해 부러워하는 격

때가 되면 모두가 서녘하늘로
석양 물들일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
세상인심 인정하고 긍정 마인드로

 

 

설이 지났다. 안도와 아쉬움이 교차한다. 일단 ‘큰 일’을 해냈다. 어느 순간부터 ‘부담’으로 다가 와버린 명절을 다시 한번 치러낸 것이다.

그래도 바쁜 일상을 핑계로 같이 하지 못했던 가족·친지들과의 만남은 즐거움이었다. 한 해가 다르게 커가는 조카나 손자,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보람이자 행복이다. 그들과의 헤어짐은 언제나처럼 ‘좋았던 시간만큼’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그랬다. 설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이 분명 있었건만 언제부턴가 아니었다. 기다림은 같으나 즐거운 날보다 반드시 치러야할 날에 대한 차이인 듯하다.

어릴 적 설날의 기쁨은 2배였다.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인정은 넘쳤다. 지금처럼 ‘고액권’은 아니었으나 세뱃돈이 있었다. 받은 돈 전부를 챙길 수는 없어 어머니에게 ‘상납’해야 했으면서도 일부분을 용돈으로 ‘환급’ 받았다.

설날은 나이가 한 살 많아져 좋았다. 모든 일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 맘대로 하는 것만 같은, 그런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다.

그렇게 빨리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고 나니 ‘설’이 달라졌다. 제일 달갑지 않은 건 나이다. 한 살을 더 먹었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 속에 ‘인생의 졸업식’에 1년 더 가까워졌다는 불편하지만 확실한 진실 때문이다.

설령 ‘졸업식’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다하더라도 청춘을 훌쩍 넘겨 ‘경고등’이 자주 들어오는 신체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새치가 시나브로 늘어 하얀 서리로 뒤덮인 머리, 움직일 때마다 ‘왕년’을 떠올려야할 정도로 확연히 저하된 체력 등 모든 게 세월에 속수무책이다.

젊은 친구들을 보며 “나도 청춘일 때가 있었는데”하는 아쉬움과 탄식이 나오기도 한다.서녘 하늘로 내려가는 해가 중천의 해를 부러워하는 셈이다.

그러나 ‘석양’을 아쉬워 말자. 조금이나마 힘이 남아 석양이라도 물들일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게 힘들다면 누군가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물들이는 석양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자.

달도 차면 기운다. 지나간 시간에 미련을 두지 말자. 어차피 지금 하늘 한 가운데서 대지를 달구는 태양도 때가 지나면, 우리처럼 우리 선배들처럼, 자연히 석양이 될 일이다. 너 나 없이 다들 똑같이 우주의 시간에서 지나가는 객(客)들일 뿐이다.

장강의 ‘앞물결’이 좋아서 바다로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니다. ‘뒷물결’에 밀려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앞물결이 얼마 전까지는 앞물결을 믿어내던 뒷물결이었던 것처럼, 지금의 뒷물결 또한 조만간 새로운 뒷물결에 밀리어 나가 바다가 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고 이치다. 버티어 선 들 의미도 없고, 버틸 수도 없다. 순응하고 흘러가는 동안 최선을 다하자. 중천이든 석양이든 언제 어디서든 빛을 비출 수 있으면 감사한 일이다.

나도 한때는 중천에 떠서 대지를 달구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자. 그 빛으로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식물의 성장을 키웠다. 누군가는 그 빛에 시린 몸을 달랬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고마운 일이다. 그에게가 아니라 나에게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의 보람이기 때문이다. 그저 덧없는 삶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시드는 꽃잎치고 아름다운 꽃이 없다. 동백이 떨어져 뒹구는 모습을 탓하지 말자. 빨갛게 피어 타오르는 빛으로 기쁨을 주었으면 그것으로 됐다. 지는 꽃이 아름답기를 바란다면 이기적이다. 그에게도 편히 마무리할 여유를 줘야 한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석양은 여유다. 중천의 태양은 구름이 싫지만, 석양에서 구름이 그 빛을 조금 가린다고 너무 유념하지 말자. 석양과 구름이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모습이 만들어지기도 할 것이다.

이제 중천에 떠 있는 해를 성원하고 응원해 주자. 나도 저렇게 뜨겁게 지상을 비출 때가 있었다. 중천의 해도 때가 되면 서쪽 하늘로 넘어와 석양을 물들인 뒤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지는 해에 야속한 게 세상인심이다. 내가 중천에 떠서 ‘관심’을 받을 때 우리 선배들은 석양에서 섭섭하기도 했을 것이다. 인지상정이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보다 긍정의 마인드로 살아가는 게 좋다. 설을 보내며 희망을 위해 절망을 노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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