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서울행 덕수궁관 관람
4월까지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 중
회화·조각·음반·영화 등 500여 점

당시 가부장적 모순된 시선들
신여성들 사회통념에 파격적 도전
‘자유로운 나, 진정한 나’ 찾기

 

꼭 보고 싶었던 전시를 핑계 삼아 지난 설 연휴를 끼고 ‘비싼’ 비행기 티켓을 끊어가며 두 달 만에 서울 나들이를 감행했다. 너무 짧아 아쉬움은 남지만 나름대로 바쁘게 움직여 좋은 전시들을 많이 담고 와서 마음은 풍족하다.

설 연휴 기간 무료 개방이니 2배의 즐거움을 느끼자며 서울토박이 작가 몇 분과 약속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덕수궁 돌담길 오르막길로 돌아서면 미술관산책로가 시작된다. 도심 속의 평온한 산책로에는 겨울공기가 스산하게 스치고 있었다.

조각 작품들이 서 있는 언덕 위로 올라가면 한국 최초의 근대식 석조건물인 석조전이 보인다. 1998년 개관한 미술관이 자리한 덕수궁의 석조전서관은 1938년에 완공된 우리나라 근대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예전에 자리했던 법원이 자리를 옮겨간 2002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바뀌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누구나 들어가 예술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상설 전시와 소장품 기획전 관람은 물론 미술을 쉽게 배울 수 있는 알찬 프로그램도 많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불어온 페미니즘에 관한 이슈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다. 영화계와 대기업에서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극계까지 여성을 대상으로 가해진 성폭력으로 화두가 된 여성의 인권, 그리고 여성 우월주의까지, 오늘날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신여성’을 빼놓을 수 없다. ‘신여성’이란 개화기 때 ‘신식 교육’을 받은 여자, 서양식 차림새를 한 여자를 이르던 말로 여성에게 한정됐던 사회적·정치적·제도적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자유를 추구한 근대시기에 새롭게 변화한 여성상이다.

이런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이 신여성(新女性)을 주제로 한 전시를 선보이며 나를 제주에서 서울로 불러들였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오는 4월1일까지 ‘신여성 도착하다’전을 열고 있다.

작품은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신여성을 보는 시선부터 신여성이 보는 시선까지, 신여성과 관련된 회화·조각·음반·영화 등 500여 점이다. 이들 작품으로 재연한 당대 신여성의 모습을 통해 ‘신여성’의 개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근대 시각문화에 등장하는 신여성의 이미지를 되짚어보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전시는 독특하게도 1층이 아니라 2층에서부터 시작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엔 한 칸마다 연도가 쓰여 있어 계단을 다 오르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들어 오감이 짜릿해 옴을 느꼈다.

전시회는 여성의 눈으로 근대를 보게 한다. 신여성의 등장과 그들을 향한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된 시선들을 보여 준다. 전시실 초입에 있는 나혜석의 삽화 ‘저것이 무엇인고’는 당대 신여성에 대한 평가를 직관적으로 담고 있다. 즉 그들을 향한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된 현실을 그림 하나로 요약해 보여주고 있었다.

근대의 구시대적 여성교육 속에서 스스로를 표현할 수단으로 예술을 선택한 근대 여성 미술가들. 기생 서화가들에서부터 정찬영·천경자·나혜석으로 이어진 여성미술가들의 삶을 그들의 작품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당대 신여성으로 꼽혔던 화가 나혜석·무용가 최승희·음악가 이난영·문학가 김명순·여성운동가 주세죽, 그 당시 인정받기보다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들 신여성들은 사회 통념을 전복하는 파격적 도전으로 근대성을 젠더의 관점에서 다시 고찰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여성작가 5인은 그들이 추구했던 자유와 해방에 대해 특정 작품의 장면 등을 차용한 신작을 통해 재해석하기도 했다. 이들 작품에선 신여성들이 추구했던 이념과 실천의 의미를 현재의 시선에서 뒤돌아 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의 근대를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 사이 문화예술에 나타난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여성의 관점에서 돌아보고자 기획됐다. 근대 신여성들은 선망과 조롱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시선을 받으며 스스로 자신의 삶의 존재의미를 증명하기위해 고군분투하며 개척하고자 노력했다.

자유로운 나, 진정한 내가 되고자 했기 때문에 비난받던 그들의 삶은 지금 여기서 새롭게 기억되고 있다. 그 흔적들이 현재를 사는 나에게 또한 그럴 수 있기를 살짝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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