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양돈업계의 조직적인 반발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지난달 28일로 예정됐던 ‘악취관리지역 지정’을 또다시 연기한 것이다. 행정에 대한 불신 자초는 물론 과연 누구를 위한 행정이냐는 비판마저 쏟아져 나온다.

악취관리지역 지정 연기는 이번이 두 번째다. 도는 당초 지난 1월 말 악취관리지역 지정을 고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양돈업계가 답변서 제출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요구하자 한차례 연기했다. 이후 김양보 제주도 환경보전국장은 “답변서 제출이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2월 28일 악취관리지역 지정 및 고시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약속은 결과적으로 허언(虛言)이 됐다. ‘생존권’을 앞세운 도내·외 양돈업계의 조직적인 반발이 잇따랐고, 제주도가 이들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악취관리지역 지정 고시는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그동안 양돈업계는 제주도의 검사방법에 대한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악취검사에 사용되는 ‘관능(코로 냄새를 맡는)검사’가 주관적일 수 있고, 그 결과 조사 대상 양돈장 대부분이 기준치를 초과하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양돈업계를 바라보는 도민들의 불신을 우리도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이 문제(악취관리지역 지정 고시)는 양돈산업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백번 양보해 양돈업계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치자. 도의 발표를 보면 ‘무기한 연기’가 있을 뿐,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고 하나 ‘줏대 없는 행정의 민낯’만 고스란히 드러난 꼴이 아닐 수 없다.

축산폐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다. 제주도의 토양조사 결과 땅속 21m 구간에서도 지하수가 오염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오염된 지하수를 단기간 내에 인위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를 자연적으로 정화하려면 수십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이 없는 제주지역의 특성상 지하수는 ‘도민들의 생명수’나 다름 없다. 제주도가 악취관리지역 지정·고시를 두 번이나 연기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도민들에 대한 배신 행위다. 이는 300 내외 양돈농가를 위해 68만 제주도민이 희생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양돈업계 또한 자신들의 이익만 쫓지 말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악취 저감 등의 자구노력을 적극 펼쳐야 한다. 임시방편식 지정 및 고시 연기에 연연하다가는, 앞으로 더욱 큰 도민적 반발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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