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신부수업 등 결혼문화 변화
육아·가사 남편 분담도 늘어
부부·자식 하나 돼 행복하란 말씀

한 이불 덮지만 극과 극인 성격
작은 갈등이 큰 화근 되기도
황혼이혼·졸혼 등 달라진 세태 실감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백년해로 하세요”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결혼식 주례사의 ‘대표적’ 구절이다.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갈 것을 ‘맹세’하도록 강요하는 주례도 있었다.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 직장을 그만 두고 ‘신부수업’을 했던 모습도 보기 드문 일이 됐다. 맞벌이가 당연시되는 시대에선 신부수업보다 직업이 더 중요해졌다.

결혼생활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아내가 전담했던 육아와 가사를 남편도 분담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남성들이 육아 휴직을 하기도 한다. 꼭 일을 나눈다는 생각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마음도 있다.

지금도 집안일은 아내가 하는 게 당연하고 가끔 한 번씩 도와준다는 입장에서 생색내다 부부싸움을 하는 가정도 있다. 삶의 방법이 다르듯 살아가는 모습도 각각 다르다.

결혼 전에 부모님께서 당부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부부는 싸워도 절대로 각방을 쓰거나 등을 돌려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그러다 보니 왼쪽에 누워있는 남편과 마주보기위해서는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야 한다. 한쪽으로만 쏠려있던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해 왼쪽으로 돌리게 되면 본의 아니게 등을 돌리는 결과가 되면서 부모님 말씀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부부가 하나 되고 부모와 자식도 하나 돼야 한다고, 가족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서로 이해하며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강조하신 말씀이 항상 가슴에 남아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이를 테면 활발한 O형 남편과 극소심 A형 아내의 성격은 너무 다르다. 한 이불을 덮고 자고는 있지만 극과극의 성격인 부부는 누구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 어느 한쪽에 맞추어야 하고 어느 한쪽이 희생을 하여야 하는가.

가끔 부부싸움을 하고 찾아오는 부부들의 공통점이 있다. 남편은 “아내가 너무 고집이 세고 말을 안듣는다”고 푸념한다. 아내 입장도 마찬가지다. 십중팔구는 남편이 자기 편을 안들어 준다는 불만이다.

“아내는 어떤 존재인가요?” 남편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대답은 “처음엔 참 예쁘고 잘 웃는 착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한국어도 늘지 않아 잘 못하고 행동도 너무 느리고 웃지도 않아요”라고 했다. 심지어 “같은 시기에 온 옆집 사람은 한국말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데”라며 비교하기도 한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며느리와 집안일 잘하고 애교가 많은 아내를 원하는 남편이다.

이번엔 아내에게 남편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한국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준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좋은 남편이 어느 날부터 성격이 급해졌다고 했다. 아내가 천천히 말을 하면 다 듣지도 않고 큰소리로 “바보야, 그게 아니야. 아휴 답답해, 빨리빨리 해야지”라고 소리친다고 한다.

남편은 말하는 즉시 아내가 바로 움직여서 일하기를 원한다. 아내는 행동에 앞서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순서를 정해서 하는 성격이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일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을 뿐 머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내에게 남편은 화를 낸다. 남편의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예의가 없고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싸우게 된다.

남편은 아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을 내뱉고 만다. “나가버려. 보내버린다. 본국으로 돌아가라” 아내는 사랑받고 싶은 남편에서 상처로 남는 말들을 듣게 된다.

참아야 하고 견뎌야 하지만 쉽지 않다. 지금 너무너무 속상하다고 표현하고 싶고 대화를 하고 싶지만 언어의 한계가 있다. 용기 내어 한마디 던진 게 화근이 된다. “‘이혼해요” 이 한마디는 한국인의 표현처럼 정말 이혼을 하자는 게 아니라 너무나 화가 나서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의사표현과 감정표현 부족으로 갈등이 심해지기도 한다. 조금만 이해하고 양보하면 될 일인데, 침소봉대(針小棒大)로 사태를 키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요즘 부부뿐만 아니라 힘든 가족들을 위해서 선택했다는 황혼이혼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 ‘졸혼’도 이슈가 되고 있다. 부담스러운 ‘부부 일심동체’보다 ‘부부 이심이체’도 받아들여야할 시대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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