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차량 늘어나며 차가 도로 점령
도로의 주인은 자동차 아니라 사람

 

 

최근 제주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50만명 대에 머물러 있던 제주의 인구는 70만명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다. 2013년 1000만명을 넘긴 국내외 관광객 수는 3년 만에 1600만명을 넘어섰다.

인구와 관광객 증가의 여파로 곳곳에 아파트와 주택, 호텔과 펜션과 같은 건축물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경관이 괜찮다 싶은 곳이면 여지없이 카페와 고급 식당이 문을 열었다. 과거와 다른 제주의 눈에 띄는 변화에 자동차로 뒤덮인 도로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도로(道路)의 道자는 본디 ‘사람(首:머리수)이 천천히 가는( :쉬엄쉬엄갈 착) 길’을 의미한다. 지금은 거의 모든 도로가 자동차를 위한 길로 인식되지만, 예전엔 온전히 사람을 위해 생겨나고 사람을 위해 존속했다.

이웃과 이웃,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소통의 고리, 공동체의 매개체가 바로 길이었다.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어르신들이 한가로이 윷놀이를 하고, 여인네가 일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곳도 바로 길이었다. 길은 인간적인 정서와 교감이 이루어지던 사람들의 생활공간이었다.

이러한 길의 기능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자동차’다. 제주도에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25년이다. 당시 제주도 통틀어 1대였던 자동차는 100년이 채 안된 지금은 무려 50만대를 넘었다.

제주도의 수용 가능한 적정 차량대수가 39만대라고 하니 늘어도 너무 많이 늘었다. 최근 5년간 제주의 연평균 자동차 증가율은 12%로 부동의 전국 1위이다. 세대당 차량 보유율 1.8대도 전국 평균인 1.04대를 월등히 넘어 전국 최고다. 한 집에 자동차 2~3대도 예사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성인 1인당 자동차 1대를 보유하게 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자동차의 급증은 자연스레 도로의 변모(變貌)로 이어졌다. 흙길 신작로에 아스콘이 씌워지고, 좁고 구불구불하던 길은 넓고 곧은 직선도로로 바뀌었다. 시내에서 시작된 차량 정체를 해소하고자 중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전에 없던 넓고 긴 도로들이 대거 개설됐다.

현재 제주에는 4427개 노선, 총 연장 4053㎞의 도로가 거미줄처럼 만나고 갈라지기를 반복하며, 질주하는 차량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걷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었던 도로가 이제는 ‘달리는 차량’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자동차의 증가와 도로의 변모는 일시적으로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다줬으나, 교통정체와 주·정차 불편, 교통사고 불안 가중이라는 부작용도 필연적으로 초래하고 있다. 자동차를 위해 넓고 곧게 뚫어놓은 길에서 이제는 사람은 물론 자동차마저 스스로 불편과 불안을 겪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주의 길을 예전처럼 오로지 사람만을 위한 길로 되돌려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차량의 흐름과 속도보다 사람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도로의 역할 변화를 꾀해야 할 시점이다.

우선 당국에서는 ‘걷는 사람’의 안전이 보장되도록 도로구조를 개선하고 안전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자동차 운전자 역시 빠른 공간이동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보행자의 안전을 해하거나 위협하지 않도록 시종 조심해서 운전해야 한다.

나의 아들·딸, 나이 드신 부모님도 지금 이 순간 도로를 걷고 있을 사람임을 명심해야 한다. 운전자인 나도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사람해요 제주!” 이 문구에는 ‘사람을 보호하고, 사람을 배려하고, 사람에게 양보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즉 사람 우선의 교통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취지에서 2018년 제주경찰이 제정한 교통안전 슬로건이다.

우리 모두 “사람해요 제주!”를 실천할 때, 사람이 안전하고 정겨움이 넘치는 제주의 옛 도로의 기능과 의미를 다소나마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도로의 주인은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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