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부기과 새인데 남·북서 이름 달라
북한 람사르 회원국 승인에 기대 커

 

 

 

지난 달 중순, 아침 출근길에 제주여고 인근의 구산마을에 사는 한 지인으로부터 급한 소식을 전달받았다. 한 번도 본 적인 없는 희귀한 새가 집 앞에 죽은 채로 있다는 것이다.

현장으로 달려가서 보니 ‘쇠물닭’이었다. 부리에서 혈액이 흘러나온 것으로 보아 도로변에서 로드킬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 새는 주로 마을연못이나 철새도래지 등의 습지에서 생활하는데, 번식기를 맞아 이동 중에 참변을 당한 것으로 보였다.

40년 전인 1978년 5월 중앙일간지에 ‘쇠물닭 한 마리가 날개가 부러진 채 제주시 주택가에서 습득되었다’는 보도가 났었다. 당시만 해도 이 새는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여름철새였지만, 번식기록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희귀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름철새로 제주도를 포함한 일부 남부 지방에서 텃새화 되었다. 제주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도내 철새도래지와 갈대밭이 무성한 마을 연못에서 번식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습지서 드물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쇠물닭의 개체수가 늘어가는 반면 제주의 습지 면적은 줄어들면서, 쇠물닭의 생존에 비상에 걸렸다. 해안조간대의 갈대 습지를 비롯하여 마을 습지가 매립되고, 새들의 생태환경을 고려하기보다는 사람들의 편의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바람에 쇠물닭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제주에는 생태계의 콩팥이라 할 수 있는 습지를 마을마다 갖고 있다. 예전에는 마실 물도 농사에 필요한 물도 귀할 정도로, 마을 연못이나 저수지는 제주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마을 유산들이다. 규모는 작지만, 후세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소중한 자원들이기에 습지의 원형이 조금씩 사라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쇠물닭과 같은 물새들의 오늘이 우리의 미래인 듯싶기도 하다.

쇠물닭은 뜸부기과에 속하고 물닭보다 몸집이 작은 새로, 생김새가 닭과 비슷하고 물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 근데 이름이 남과 북에서 다르다. 남한의 ‘쇠물닭’과 ‘물닭’을 북한에선 ‘물닭’과 ‘큰물닭’이라 부른다.

남과 북이 갈라서면서 새들 이름에서마저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슬픔을 조금이나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보다 쇠물닭이 더 희망했을지도 모른다.

오는 5월 중순에 북한이 170번째 람사르 회원국으로 승인받을 예정이다. 두만강 하구의 라선철새보호구와 청천강 하구의 문덕철새보호구가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다.

이들 2곳은 동북아시아를 지나는 철새들의 에너지 충전지로서 중요한 지역이다. 남한은 현재 22곳이 람사르 습지로 지정돼 있으며, 제주도는 물영아리오름 습지 등 5군데를 갖고 있다.

그동안 철새들의 생태과정과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데 있어 제주도와 북한의 습지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북한의 람사르 회원국으로의 진입을 발판으로, 지역 간 습지생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판단된다.

쇠물닭이 전국적으로 이슈화된 지 40년이 지났다. 충돌사하는 안타까운 뉴스보다는 쇠물닭이 남과 북의 평화를 전달하는 구원자로 등판하는 소식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이제 한반도에서는 판문점 습지의 도보다리에서 진행된 남북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발 빠르게 한반도 평화정책에 대한 실행계획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다. 종전 선언·동북아 철도 여행·이산가족 상봉·대통령의 평양 방문 등에 버금갈 정도로, 생태연구 교류 사업에도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각 자치단체별로 파격적인 정책을 경쟁적으로 제안할 것이며, 백두산과 한라산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 제주도로서도 만반의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제주도와 북한의 람사르 습지가 한반도의 평화 디딤돌은 물론 남과 북을 오가는 쇠물닭을 하나 된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되듯 우리 한민족의 하나 됨에 기여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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