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피해 어르신들 인생의 일몰기
현실적 지원책 시급한 공동체 과제

 

 

불교경전 중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의하면 우리의 어머니는 자식을 낳을 때마다 서 말 여덟 되의 응혈을 흘리고, 여덟 섬 너 말의 젖을 먹이며 키웠으니 자식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업고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고서 수리산을 백천번 돌아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어버이의 은혜는 크고도 깊은 것이다.

오늘은 마흔 여섯 번째 어버이날이다. 그리고 올해는 제주4·3이 70주년 되는 해다. 유족회장이라는 직책상 어르신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그 분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가슴 미어지는 고통을 참을 길이 없다.

제주의 어버이들은 4·3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을 잃고 생활터전마저 잃어야 했다. 육체적 장애를 입고, 소중한 가족을 잃고, 정신적 트라우마의 멍에를 안고 살아왔다. 비참한 여건에서도 다시 꿋꿋이 가정을 일으켜 세우고 제주공동체를 기적적으로 회복시켰다.

지독지정( )으로 맹목적이고도 무한히 깊은 내리사랑을 쏟아주신 것이다. 하지만 70년 전 제주 땅에서 벌어진 비극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으신 어르신들은 안타깝게도 인생여정의 일몰을 맞고 계시다.

제주4·3 7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어 나름 유의미한 결과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제주4·3에 대한 범국민적인 관심이 널리 확산되어 제주4·3이 평화와 인권의 새로운 가치로서 정립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점은 상당히 반가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4·3특별법 개정 등 앞으로 꼭 이루어야 할 일들에 난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지금 살아계신 4·3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걱정이 크다.

현재 4·3으로 인한 후유장애인과 수형생존자를 포함한 80세 이상 고령유족은 4000명에 이른다. 이 분들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는 복지정책이 있긴 하지만 지극히 제한적이며 현실적이지 못해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 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지원 대책이 무엇인지 시급히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제주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함께 해야 할 공동체적 과제다.

그동안 무조건적으로 받기만 했던 그 분들의 사랑에 대해 우리가 사회적 보답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 했다. 즉 살아계실 때 자식 된 도리를 다하라는 뜻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고도 황폐된 제주 땅에서 억척같이 살아오신 그 분들을 생각하면 항상 후손으로서의 죄책감이 앞선다. 그때마다 과거 지켜드리지 못했던 인권과 바로 세우지 못했던 4·3의 역사를 바로잡아 드려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곤 한다.

우리는 빨간 동백꽃 배지를 달고 4·3을 알려왔다. 우리들의 옷깃에 매단 동백꽃 배지는 희생자에 대한 진심어린 추모와 4·3해결에 대한 다짐의 표현이기도 하다.

4·3특별법이 개정되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4·3이 정의로운 해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동백꽃은 우리의 가슴 한편에서 더욱 붉어져야 할 것이다. 더불어, 오늘 아침 우리 어버이들의 가슴에 달아드린 카네이션도 과거 불모의 제주 땅을 피땀으로 일구어내신 어르신들의 은덕에 감사하고 칭송하는 마음을 담아 더욱 화사하게 빛나길 바란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헌신하신 어르신에 대한 공경과 감사의 표현을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실천해 나갈 때 우리의 제주는 더욱 끈끈한 공동체로 발전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사회 구현에도 한발 더 다가설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지난 70주년 4·3추념식에 참석,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시며 ‘제주의 봄’을 알려주셨다. 그 봄기운 실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보은(報恩)의 책무를 아직 완전히 행하지 않음을 엄하게 꾸짖는 것 같아 아직까지 죄스럽기만 하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더 늦기 전에 어른들에 대한 도리를 다할 것을 어버이날에 거듭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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