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공직 이어 도의원 12년 봉사
도의장 영예에 농업인 지원 등 보람

 

 

30년 넘게 봉직했던 공직을 마감하고 있을 때 문득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의 저서 ‘디플로머시(Diplomacy)’가 생각이 났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여행자여, 길은 없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스페인의 속담을 인용했다.

당시 필자의 위치는 공직이라는 하나의 여행을 마치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설 때였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질 무렵 내 앞에는 지방선거라는 또 다른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12년에 걸친 나의 도의회 의원 생활이 시작됐다.

필자는 3선 도의원이다. 2006년 특별자치도가 출범할 때 제8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된 후 현재까지 12년 간의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초선의원일 때는 부의장도 역임했고, 10대 도의회에서는 전반기 의장으로서 의회 수장의 영광도 누렸다.

12년 의정활동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몇 가지 공을 들였던 의정활동의 기억들을 반추해본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지난 2008년 ‘제주도와 의회’ 간에 정책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한 ‘제주도 정책협의에 관한 조례’다. 이 조례를 토대로 주요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정책협의회를 통해 의견을 조율해 오고 있다. 필자는 이 조례를 제정함으로써 우수조례상을 받는 영광도 누릴 수 있었다.

다음은 농업인들을 생각한 일이다. FTA자금을 1500평 이하 영세농가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FTA자금 지원이 규모농에게만 편중됐던 것을 제도 개선, 이 자금의 30%를 1500평 이하 영세농에게 지원토록 함으로써 고령농가와 여성농업인 등 어려운 농가에 힘이 돼 줄 수 있었다.

농가에 대한 농기구 지원제도도 과거에는 농기구 지원을 받으면 기종에 관계없이 5년 동안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이를 기종별 지원으로 바꿔 기계만 다르면 매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밭농사 지원 확대도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당시 감귤조수익과 밭작물 조수입이 큰 차이가 없었음에도 밭작물 지원금은 감귤(9600여억 원)의 절반(4500여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자 이를 개선, 감귤조수입에 비례한 금액(8100여억 원)을 지원할 수 있도록 농업개발 10개년 계획을 수정했다.

다음은 의회의 수장인 의장으로서의 활동이다. 필자는 ‘도민을 하늘같이 받들며 더 내려서고, 더 새로워지고, 더 나아가겠습니다’라는 의정슬로건을 세우고 도민이 주인이 되는 의정활동을 폈다.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전국 광역시·도의회에서는 처음으로 ‘의정혁신계획’을 세워 권위 의식과 낡은 관행을 모두 내려놓고자 했다. 그 결과 우리 도의회는 대한민국 의정대상 최고 의장상·최고 의원상·우수 의원상·우수 조례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수상의 쾌거를 이뤄냈다.

물론 예산개혁을 위해 예산 과다 삭감과 증액을 ‘협치’로 풀고자 예산협치를 제안했지만 오해로 인해 이른바 예산전쟁이 터졌고, ‘예산안 부동의’ ‘예산안 부결’ 사태가 발생하여 도민들에게 걱정을 안겨드렸던 일도 있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예산실무협의체가 탄생했고, 예산개혁의 단초가 마련된 것은 큰 위안이 되기도 했다.

필자는 직업을 도의원으로 알고 살아 왔다. 공직을 퇴직한 이후 새로 얻은 직업이다. 농사를 지을 땅도 없었지만, 또 다른 사업을 할 일이 없으니 의정활동에 전념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진부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앉으나 서나 의정활동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오죽 했으면 안사람이 그런 필자 때문에 불행하다는 표현을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제 12년간의 의정활동을 끝내고 또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여행자여, 길은 없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스페인의 속담을 다시 한 번 더 가슴에 새긴다. 미래의 나는 어떤 인생길을 걷고 있을지 그게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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