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지난해 8월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국민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듣겠다는 소통(疏通) 강화 차원에서 만든 제도였다. 게시판에 올라온 국민청원이 30일간 20만명 동의를 받으면 청와대가 직접 해당사안에 대한 답변을 하게 되어 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달 23일 기준 누적 청원은 19만개가 넘은 상태다. 하루 평균 683개의 청원 글이 올라온 셈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청원으로 부작용이 속출하면서 당초 ‘국민과의 소통’ 의미는 반감되고, 특정인에 대한 성토 및 ‘선동(煽動)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게 “영화배우 수지를 사형시켜달라”는 청원이다. 수지는 최근 불거진 ‘피팅모델 강제 촬영 스튜디오’ 관련 처벌 요구 청원에 동의한다고 인증했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실은 해당 스튜디오가 장소만 일치할 뿐 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청와대 게시판에 ‘사형(死刑)’까지 운운하는 것은 그 도(度)가 너무 지나침은 물론 결코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가 없다.

이런 케이스는 한 둘이 아니다. 북한이 지난 16일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연기하면서 탈북한 태영호 전 공사를 지목하자, 청와대 게시판에는 ‘추방 청원’이 줄을 이었다. 이보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청원도 있었다. 문제는 청와대가 법원행정처에 이 같은 청원내용을 전달했다는 점이다. 이는 ‘무언(無言)의 압력’에 다름 아니다. 법조계에서 “삼권분립 및 법치주의를 해치는 심각한 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 이유다.

국민과의 소통 강화라는 청원 게시판의 순기능적 측면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청와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때문에 지금처럼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양상으로 변질되어 가는 청원 제도의 문제점은 하루 빨리 보완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국민들이 언제까지 대통령과 청와대만 바라보며 살게 할 것인가. 문재인 정부도 이제 출범 1주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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