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이 소멸 않고 항공기 운항 방해
‘저시정’ 상황 3단계 걸쳐 철저 통제

 

 

제주공항에는 감히 지상 최고라 말할 수 있는 자연이 만든 전망대가 있다. 바로 공항 북쪽에 위치한 도두봉이다. 해발 65.3m의 아담한 이 오름은 제주 쪽빛 바다와 한라산 풍경을 모두 간직한 입소문 자자한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제주공항을 한 눈에 넣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시원하게 펼쳐진 녹색의 착륙대 사이로 반듯한 활주로를 따라 항공기의 접근(Approaching)과 이착륙(Take-off & Landing), 지상이동(Taxing)을 모두 전망할 수 있는 곳이다. 수백 t에 이르는 항공기가 땅을 박차고 올라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광경에 때론 경외심마저 들기도 한다.

지난달 육지부 손님을 모시고 이곳을 찾은 일이 있었다. 그날따라 강한 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궂은 날씨임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정상의 경치를 만끽하고 있었다.

한 아이가 신기한 듯 “보세요, 비행기가 옆으로 내려와요”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니 한참 접근중인 항공기가 크랩 착륙(Crab landing)을 시도하고 있었다. 공항 상공에 돌풍을 동반한 측풍이 불 때 영어표현 그대로 게(Crab)걸음 하듯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기수를 돌려 활주로에 접근해서 착륙하는 방법이다.

외견상 동체가 기울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풍향에 따라 항공기 방향을 움직이는 조종법들이다. 총명한 그 아이에게 이런 말 저런 말 공항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주고 싶었지만 결국 멋쩍은 웃음만 남기고 돌아섰다.

요즘 새벽이면 잠을 설치는 일이 많다. 바로 오뉴월이면 공항 저시정(低視程) 상황을 알리는 핸드폰 문자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육상의 안개는 복사열로 발생해서 해가 뜨면 대부분 사라지지만 제주 안개는 태생이 다르다. 남서쪽의 온난 다습한 공기가 상대적으로 차가운 해상을 지날 때 온도차로 발생한 일명 ‘해무’인 까닭에 한번 생성되면 인근 해상을 뒤덮고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태양이 지속적으로 지면을 데우거나 ‘남동풍을 빌려온 제갈량처럼’ 남쪽 바람을 기다려 소멸을 기대할 뿐이다. 항공기 운항을 방해하는 해무의 고약한 특징이다.

도두봉에서 이 해무를 지켜보면 공항 해안 경계선을 따라 서성이는 성난 도발자의 모습이다. 모두가 잠든 야음을 틈타 공항으로 넘어왔다가 날이 밝아 한라산 기운을 품은 바람에 밀려 바다로 후퇴하기를 반복한다. 대낮임에도 무례하기 짝이 없게 호시탐탐 공항으로 도발을 감행한다.

해무가 밀려오면 공항 종사자들은 발길이 분주해진다. 관제탑과 기상대를 중심으로, 공항공사·항공사·지상조업사 등 관계기관에 상황을 전파하고 본격적인 저시정 운영절차를 가동한다.

총 3단계에 걸쳐 항공기의 지상 이동, 차량과 장비, 사람의 이동까지 지정된 경로와 절차에 따라 철저히 통제한다. 이를 통해 항공기는 안개 속에서도 계기착륙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착륙하고 계류장까지 이동해 승객들의 여행을 돕는다. 제주공항은 활주로 방향에 따라 다르지만 300m이상의 시정에서 착륙이 가능한 수준(CATⅡ)이다.

올해 들어 벌써 15번의 저시정 절차를 운영했다. 새벽 무렵 저시정 운영상황을 전해들을 때면 통화음 너머로 전해지는 분주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안전운항 준비에 여념이 없을 현장 종사자들을 생각하면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한다. 얄미운 안개 탓에 승객들의 발이 묶일까 노심초사 출근길을 서두르며 잠시나마 잠투정을 부린 것 같아 부끄러울 때도 있다.

마지막으로 도두봉 말고도 제주공항을 제대로 전망할 수 있는 핫한 장소를 하나 더 소개할까 한다. 용담레포츠 공원에서 공항 외곽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항공기 이착륙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곳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주말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겸해 비행기 구경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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