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예멘 난민에 ‘난리법석’
난민반대 청와대 청원 70만 넘어서
잠재적 테러·성범죄자 취급

우리 민족·도민들도 한때 ‘난민’
고조선·백제 이어 4·3때도 해외로
난민과 평화로운 삶 나눌 수 있어야

 

1951년 7월 28일 채택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유엔협약’은 “인종·종교·민족 또는 정치적 의견을 달리 한다는 이유로 차별과 박해를 받을 가능성과 그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나라를 떠나 있거나 또는 자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아니면 자국의 보호 받기를 원치 않는 자”를 난민이라 정의하고 있다.

​1960년대에는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국가들이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인종 및 종교 갈등 등으로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다. 베트남 전쟁도 국제사회 난민 발생의 주요 요인이 됐다.

유엔난민기구는 유럽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아시아·남아메리카 등의 난민 보호와 더불어 그 역할을 난민보호에만 국한하지 않고 고향을 떠나 피난처를 구하는 국내 실향민에 대한 보호 및 지원 활동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1950년 12월 14일 설립된 유엔난민기구는 설립 당시 34명이던 직원은 현재 9300명 이상으로 늘어났으며 125 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설립 초기인 1951년 유엔난민기구 1년 예산은 고작 30만 달러였으나 2015년에는 70억 달러 수준으로 늘어났다. 이런 유엔난민기구의 인도주의적 활동이 알려지면서 1954년과 1981년 두 차례나 노벨 평화상을 받은바 있다.

요즈음 외신에서 거론되는 보트피플의 역사는 어쩌면 한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BC108년 경 한나라에 고조선 마지막 왕조라 할 수 있는 위만 조선이 망하자 많은 난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6세기경에는 가야국이 해체될 때, 그리고 백제가 멸망할 때도 많은 유민들이 바다 건너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아스카 문화의 원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스카의 원뜻은 편안한 잠자리를 의미한다는 안숙(安宿)이었다고 한다. 현해탄의 거센 물결을 작은 보트로 헤치며 건너가 드디어 편안한 잠자리를 얻게 되었다는 뜻이 배어있는 말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일제시대, 제주 4·3, 6·25 전쟁, 유신 정권하, 그리고 광주 5·18 때도 이국땅에서 거처를 구한 한국 난민들이 생겨난 바가 있다.

이런 난민의 역사를 우리가 가지고 있음에도 5000명도 아닌 548명의 예멘 난민들이 갑자기 제주를 찾아와 난민 신청을 하게됐다고 마치 한반도에 난리가 날 것처럼 법석이다. 그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이들 중 분명 IS(이슬람국가) 요원들이 섞여있을 가능성이 있고, 젊은 남자 난민 신청 지원자들은 어쩌면 예비 성범죄자들일 수 있다고 야단이다.

그리고 제주 예멘 난민을 돕자는 필자의 블로그 글에도 수백 건 이상의 악플이 달렸다. 지금이라도 “제주의 무비자 입국 제도를 철폐하고 난민법을 바꾸라”고 청와대 청원에 서명한 사람이 지난 주말 70만을 넘었다.

이들에게 팩트를 알리고 난민 협약에 가입한 그 의미와 더불어 협약에 따른 의무를 바로 알려야할 언론마저도 같이 널을 뛰고 있는 형상이라 안타깝다. 최근 열렸던 제주 평화 포럼에서 조차 난민 세션에 참여하려던 예멘난민들은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입장 금지를 당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난민들의 역사서라 할 수 있는 성서와 그 주인공이자 대표적 난민이라 할 수 있는 ‘예수를 믿는다는’ 한국 기독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난민 반대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54년 노벨 평화상 수상 후 유엔난민기구는 이렇게 수상 소감을 밝힌 적이 있다. “난민을 위한 활동이 평화를 위한 활동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만, 만약 전쟁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그들을 형제애로 포용하는 것이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난민을 돕는 다는 것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것인 동시에 곧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이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 그 이상의 것이다. 평화는 어느 나라, 어떤 종류의 사람도 두려움과 결핍 속에서 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튼 국내외적으로 난민을 받는 문제에 대한 반대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난민의 사정을 이해하고 그들과 평화로운 삶을 같이 나누는 일이 인류와 더불어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더 더욱 평화의 섬 제주에 산다는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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