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대 공약 이행에 7조5000억원
제주도 재정 여건상 불가능한 수치
더 큰 문제는 공약의 질적 수준

‘조배죽’ 시절 하던 공약도 다수
즉각적인 필요성보다 선거용 선심성
곧 나올 元도정 2기 이행계획 주목

 

선거관리위원회는 정책선거를 강조한다. 각종 선거 때 우리 세금을 들여 유권자를 대상으로 ‘정책을 보고 투표하라’는 홍보 캠페인을 진행하고, 후보들 모아서 정책협약식을 갖기도 한다. 메니페스토 정책을 제시하라고도 한다.

지난 6·13지방선거 제주도지사 선거는 선관위의 정책선거 노력을 수포로 만들어 버린 ‘역대급 네거티브’ 선거였다. 어르신들로부터는 ‘신구범·우근민 선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비판이, 주변 젊은 친구들로부터는 ‘조배죽(조직을 배신하면 죽음)’, ‘타미우스’, ‘비오토피아’ 등만 기억되고 정책은 맹탕인 도지사 선거였다는 조롱섞인 반응이 나온다.

그런 선거가 끝난 지 두 달이 넘어서고 있다, ‘진짜 조배죽은 어느 캠프에 있었을까’라는 궁금증도 선거 후일담 수준으로 묻혀 가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남는 것은 두 가지다. 고소·고발 사건과 선거 때는 관심이 없었던 정책과 공약이다. 도지사 후보 시절 고소·고발건은 양측 변호사들의 몫일 것이다.

그런데 당선된 후보의 정책과 공약은 유권자의 몫, 도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최근에 공개된 원희룡 도지사의 공약은 목록만 200개가 넘는다, 도지사 후보의 공약이 먼지도 몰랐던 나 같은 유권자의 책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원 후보의 선거공보에 없던 내용도 있었고, ‘네거티브 선거’ 구경에 몰입하다보니 그냥 지나친 공약도 있었다. 후보들 공약 내용이 무엇인지 꼼꼼히 살피지 못한 건 유권자 책임이다.

문제는 공약 이행 비용이다. 공약 실천에는 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행 재원에는 혈세가 투입된다. 당선된 도지사의 주거지가 취락지구가 됐다고 해서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그 시세 차익의 일부라도 내놓지는 않는다. 모두 다 국민들과 도민들이 낸 세금으로 충당한다.

원희룡 도지사의 200대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7조 5000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도청 일부 고위 공무원들은 “이미 하던 일들도 있고, 지사님 공약이라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중앙정부에 70%를 의존하는 제주도 재정 구조와 재정 여건 등을 감안하면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수치다.

실제 원희룡 도지사 ‘공신록’을 대신 써놓은 것 같은 공약실천위원회에서는 담당부서 공무원들은 ‘선거 때냐 무슨 말인들 못하겠느냐’ 등 공약 통폐합이나 실현 불가능성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반면 민선 7기 공약실천 도민배심원단 참여 위원들은 각계각층의 요구를 더 반영해야 하는 상황이라 공약 이행비용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문제는 공약의 질적 수준이다. 시민단체인 제주주민자치연대가 200대 공약을 분야로 나눠서 분석한 결과 당장 눈이 들어오는 것은 ‘무슨 회관, 센터 건립’ 등 이었다. 지면상 다 열거 할 수는 없지만 전체 공약의 20%가 이 같은 류의 공약이었다.

물론 시급하게 건립이 필요한 회관 및 센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회관·센터형 공약은 대체로 특정 계층의 요구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다. 즉각적인 필요성 보다는 선거용 ‘매표’ 같은 ‘조배죽’ 시절에 존재했던 공약이나 다름없다고 필자는 본다.

제주통일공원 및 통일회관 조성 사업의 경우 40억도 아닌 470억이 필요하다는 공약실천위 관련 분과 회의자료도 있었다. 실향민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측면은 이해되지만 과도한 예산이라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기독교인 원희룡 지사 공약 중에는 제주불교종합문화센터 건립도 있다. 의도는 미루어 짐작이 된다. 하지만 이런 식이면 기독교도, 천주교도, 원불교,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별로 문화센터를 설립해 줘야 한다. 공약 이행만이 능사가 아니다.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사업 추진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달 말이면 공약실천위원회 등에서 원희룡 도정 2기 청사진이 될 공약이행계획이 나온다고 한다. ‘공신들을 위한 잔치계획’이 될지, 과감히 버릴 것은 버린 ‘다이어트 공약실천계획’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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