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추념식서 만난 사람들]
에도유키하루
“아버지의 유지 받들어서
앞으로 매년 공양들일 것”
이춘아 할머니
“거기있던 사람들 다 죽었어
나만 살았는데 거의 죽었지”

대마도에서 제주4.3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한 일본인 에도히카루씨의 아들 에도유키하루 

 

△ 제주 4.3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해온 일본인 

일본 대마도에서 제주4.3사건 예비검속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했던 일본인 에도히카루씨의 아들 에도유키하루(62세, 남)씨가 고인이 되신 아버지를 대신해 이번 추념식에 참석했다. 

예비검속이란 1948년 10월 이후 내부무가 제주 4·3사건과 관련해 재판을 받았거나 수형 사실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검속과 처형이 이루어진 사건이다. 정식재판도 없이 즉결처형된 이들의 시신을 수습해준 이가 유키하루씨의 아버지인 에도히카루씨다. 

유키하루씨의 증언에 의하면 1949년을 전후로 수백구의 시신이 대마도로 떠내려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10구정도의 시신이 대마도 북부 사구만에서 발견됐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시신들이 대마도 해안으로 떠내려 왔고 당시 그의 아버지는 수백여구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시신의 옷에 붙은 라벨에서 한글을 발견하고 이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제주 4.3희생자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단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와 한국에 대한 역사적 과오를 씻기 위한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이후 2007년 유키하루씨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대마도에 대지를 직접 매입한 뒤 공양탑을 건립해 매년 공양을 드리고 있다. 
제주 4.3과 공영탑의 관계는 2016년 요미우리신문 취재결과 밝혀졌다. 이후 일본인들로 구성된 제주 4·3한라산회와 김시종 시인의 증언이 보태지면서 공양탑의 의미는 더욱 명확해 졌다. 
70년간 공양을 드린 영현들의 억울한 사연을 그때서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사건의 본토인 제주에서조차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영현들이 많다는 사실을 미뤄볼 때 에도 가족의 희생은  더 없이 감사한 일이며 나아가 더 큰 조명을 받아야 할 것이다. 

유키하루씨 “시대적 배경 때문에 너무 많은 희생을 낳았고 제주 4.3에 대해 알면 알수록 너무나 큰 참극이라고 느낀다”며 희생자들의 아픔을 공감했다. 이어 “앞으로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앞으로도 매년 공양을 드릴 것”이라며 “다만 대마도에 오는 한국인이 이런 사실을 알고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뱃속에 아이를 가진 채 총을 맞은 4.3사건 피해자 이춘아 할머니

△ 뱃속에 아이를 가진 채 총을 맞아 쓰러진 이춘아 할머니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 살고 계신 이춘아(93세) 할머니는 4.3사건으로 남편을 잃고 유복자인 딸 김정희씨와 함께 살아왔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말씀도 잘 하시고 건강하셨는데 최근에는 기억도 가물가물해질 정도라며 김정희씨는 어머니를 걱정했다. 
이춘아 할머니는 인터뷰 도중 4.3평화공원 옆에 위치한 거친오름을 가리키며 “저건 무슨 오름인가?”라고 문득 질문했다. 이어 “저기서 천도제를 지냈는데...”라며 지난 날 4.3평화공원이 건립되기 전 오름 인근에서 추모제를 지낸 일을 기억해낸 것이다. 70년의 세월이 지나고 그녀의 몸은 많이 약해졌지만 슬픈 기억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거기 있던 사람들 다 죽었어 나만 살았어 나도 거의 죽었지”라며 당시를 회상하는 표정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맴돈다. 
1948년 10월경 당시 22살인 이춘아 할머니는 임신 3개월째였다. 당시 친정을 다녀오는 길에 시댁에 들어서자마자 시아버지가 무조건 도망가라고 말해 그녀는 정신없이 산으로 뛰었다. 폭도들이 총을 쏘며 쫓아왔고 겁에 질린 그녀는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나 곧 폭도들이 쏜 총이 배를 관통했고 할머니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다음날 오전 8시경이었고 온 몸에 피가 흥건한 채 주민의 도움으로 집에 올 수 있었다. 
두 달이 지난 1948년 12월경에는 폭도들이 집안으로 들이닥쳐 남편을 붙잡아갔다. 그는 신엄리 너른 들판에서 총을 맞고 죽었다. 아무도 그가 죽는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미망인이 된 그녀는 이듬해 4월에 딸을 출산한다. 1948년 그해 겨울, 죽음과 같은 공포와 슬픔은 다시 돌아온 봄, 새로운 생명으로 이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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