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일제 36년간의 암흑기에 잃어버렸던 민족혼을 일깨우고자 하는 교육열기가 일기 시작하였다. 제주도에서도 지역 곳곳에서 초등학교의 증설은 몰론 중등학교 설립 추진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당시 성산포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 초등학교는 다수가 설립되어 있었으나 교육의 중추적인 중·고등학교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진학하려면 제주시나 서귀포 등지에 유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이었다. 그것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일부 소수계층에서 가능했으나 대부분의 지역 주민들은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지역민의 여망은 지역 내에서 고등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었지만 당시 국가 형편상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었으며, 그렇다고 지역경제 사정도 극히 곤란하여 학교 설립은 대단히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성산포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에 의하여 학교 설립이 추진되어 갔다. 1948년 봄, 당시 성산면장이던 현경만씨를 비롯해서 구한말 면장을 지낸 김학보, 강호준씨 등이 주축이 되어 성산중학교 설립위원회를 구성하여 적극 추진하게 되었다. 교사는 당시 이 지역 독지가였던 강희정씨가 제공한 창고(현 제일의원 후편)를 개조하여 마련하여 1948년 9월 11일 학생60여명으로 2년제 성산중학원이 개교하게 되었다. 초대원장은 당시 성산면장인 현경만씨가 취임했고 교사로는 강승률, 김옥찬, 강석순, 양중해, 김승오, 현윤석, 오윤식 선생 등이 맡았다. 한편 2년제 중학원이 개원 되었으나 2년제로는 성산지역의 당초 목표인 중등교육기능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중학교과정과 고등학교교육 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정규 중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 당시 지역사회는 전문기술인력 양성을 필요로 하였고, 척박한 농토 등 농업 환경이 좋지 않은 제주도의 여건상 농업계보다는 무한한 자원의 보고인 바다의 수산업 개발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었다. 특히 성산포에는 환태평양의 중심적 위치로서 해양진출의 기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수산계 학교 설립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모아지게 됐다. 이리하여 현경만(당시 성산면장)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본격적인 학교설립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같은 시기인 1949년 봄 한림지역에서도 수산중학교 설립 유치운동이 일어나 성산지역과 대립하게 되자 위원장인 현경만씨와 강석준씨가 즉시 상경, 문교부장관을 예방하여 성산포지역이 수산고등학교 설립의 당위성을 설명하게 된다. 성산포지역은 어업전진기기 역할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어장이 있어 훌륭한 교육실습장을 갖추고 있는 점 등 제반 여건상 성산포지역이 수산중학교설립의 최적지임을 설명하여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내게 된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김용하 제주도지사가 학교설립 예정 부지를 현장 답사하고 타당성을 문교부에 보고함으로써 드디어 1949년 9월 29일 인가를 얻기에 이르렀다. ▲어려웠던 교사신축의 과정 교사 건립에 있어서 많은 난관과 우여곡절이 뒤따랐다. 학교부지는 이미 확보한 고성리 300번지 일대 8천여 평이었는데 그 중간에 개인소유 농지가 1,396평이 들어 있어 팔 수 없다는 지주들을 몇 차례 설득하여 매수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총 8,025평의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건축에 소요되는 자재는 제주도지사가 문교부에 요청하여 미국원조물자인목재 200만재를 배정받아 마련하였는데, 이 목재는 부산에서 화물선으로 성산포항까지 수송하여 온 것을, 당시 육로수송수단이 어렵기 때문에 성산중학원 2학년 학생들을 동원하여 뗏목을 만들어 만조시간에 양어장 재방까지 운반하여 이를 해체하고 양어장 수면에 띄운 다음 학교부지까지 운반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학교부지는 대부분이 암반투성이었기 때문에 각 리별로 주민노력 동원과 학생들까지 동원되어 정지작업을 하였으며, 건축공사는 시흥리 문목수에게 청부를 주어 1949년 가을부터 시작하였는데 그 이듬해인 1950년 6월 1일 본관 6개 교실이 준공됨으로써 학교의 기반을 일부나마 갖출 수 있었다. 1950년 6·25사변이 일어남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자 3학년 69명중징집명령에 해당한 38명이 지원입대(대부분 해군 지원) 함으로써 3학년은 사실상 휴강상태가 계속되다가 1951년 7월 6일자로 졸업장을 수여한 것이 성산수산중학교 제1회 졸업생 배출이었다. ▲성산수산고등학교로의 승격 당시 제주도내 고등학교의 설립은 학제의 변동과 사회여건상 먼저 중학교 설립을 하고 난 다음 고등학교로의 승격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 상황이었다. 1951년 3월 20일 제2차 개정학제는 중학교의 수업년한을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고 고등학교의 입학자격을 중학교 졸업자로 제한하였다. 이에 따라 1951년 8월 31일 4년제의 성산수산중학교는 3년제의 성산중학교로 조정되고 3년제의 성산수산고등학교로 승격 인가함으로써 오늘의 성산수산고등학교가 탄생하게 된다. 성산수산고등학교는 인가 당시 증식과로 되어 있었으나 1953년도에 증식과를 폐과하고 어로과와 제조과를 신설하게 된다. 1966년에 기관과를 신설하고 1981년도에는 항해과, 1989년에는 수산양식과를 신설 인가를 받아내면서 수산고등학교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면서 발전하여 왔다. 1984년 11월 29일 현 위치인 성산읍 오조리 360번지상에 신축교사를 지어 학교를 이설한 후 1999년 학칙변경 인가에 의해 전학과 남녀공학 특성화고로 해양산업과·관광해양레포츠과·관광공예과·관광정보통신과·관광외국어과 등 5개과에 각3학급씩 15학급으로 운영되고 있다. 실험실습동·수산양식장·전자통신과 실습실·식품공학과 발효저장실·멀티미디어실 등 첨단교육시설을 완비했으며, 2000년 3월 1일 제주관광해양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5년 3월 1일 양정헌 교장이 부임하였으며 2006년 2월 제53회 졸업생을 포함 총 7,605명의 졸업동문을 갖고 있는 제주동부지역 지방명문고로써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양정헌 교장은 학교운영방침으로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부응하고, 교육 수요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밀 도 있는 교육을 통하여 학생의 미래를 열어주는 막중한 역할과 책임을 다해 나가겠다고 했다. 학교교육의 목표는 첫째, 특성화 고등학교의 특성을 살린 기능인을 육성하고, 둘째, 국제화에 동참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며, 셋째, ‘우리’를 중시하는 공동체의식을 실현해 나가는 데 두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학생·교사·학부모·지역사회가 혼연일체가 되어 교육의 목표달성을 위해 교육현장에서 최선을 노력을 기울여 나간다고 밝혔다.

강   선   종 (기획실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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