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愛빠지다- '알고보는' 제주돌문화공원 ②]
절절 끓는 모성애에 ‘숙연’…올해부터 오백장군탑도 가까이서 관람
설문대할망 치마 형상화한 설문대할망탑서 매년 제사·문화제 거행

매년 5월 15일은 죽솥에 빠져죽은 설문대할망을 기리는 제가 봉행된다. 올해는 거행된 설문대할망제에 참석한 9명의 여성 제관들은 제주도민의 안녕과 세계 평화를 염원했다.
매년 5월 15일은 죽솥에 빠져죽은 설문대할망을 기리는 제가 봉행된다. 올해 거행된 설문대할망제에 참석한 9명의 여성 제관들은 제주도민의 안녕과 세계 평화를 염원했다.

사람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와 곰이 동굴 안에서 마늘과 쑥만 먹으면서 살다가 100일을 견디지 못한 호랑이는 포기하고 곰만 100일을 버텨 사람이 됐다는 고조선의 건국이야기, 단군신화처럼 제주에는 ‘설문대할망 신화’가 있다.

키가 컸던 설문대할망이 용연이나 홍리물 등 제주지역에 있는 물의 깊이를 재다 한라산 물장오리에 들어섰다가 죽었다는 이야기와 500명의 아들이 먹을 죽을 끓이다가 죽통에 빠져 죽었다는 두 가지 신화가 전해진다.

두 번째 이야기에는 오백장군 설화가 더해진다. 집을 나갔던 아들들이 돌아와서 죽을 먹는데 뒤늦게 돌아온 막내아들이 죽솥에서 큰 뼈다귀를 발견하고 직감적으로 어머니라는 것을 알고는 그 죽을 먹은 형제들과 함께 살지 못하겠다며 멀리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으로 달려가서 바위가 되고 만다. 나머지 499명의 아들들도 어머니를 그리다 모두 바위로 굳어졌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오백장군 설화다.

지난 2005년 제주시 조천읍에 개관한 제주돌문화공원은 이 ‘설문대할망’이 핵심축이다.

설문대할망이 주요 테마인만큼 공원 구석구석에는 이를 상징하는 형상물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공원 입구를 지나 처음 마주하게 되는 50t 거석들로 설치된 ‘전설의 통로’ 끝 가운데에는 모자상이 있다. 이 모자상은 설문대할망의 애틋한 모성애가 잘 표현된 자연석이다.

그리고 ‘전설의 통로’를 접해 있는 넓은 잔디마당에는 설문대할망을 상징하는 탑이 9기가 있다. 방사탑 모양을 하고 있지만 설문대할망 치마를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를 그리다 돌이 됐다는 한라산 영실의 기암절벽 ‘오백장군’을 형상화한 오백장군 군상과 오백장군탑은 국내외 예술인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상설복합문화공간인 오백장군갤러리 입구를 든든하게 지켜서고 있다.

돌문화공원 신화의 정원에 사열하듯 세워진 오백장군 상징석은 그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오백장군 상징탑이 있는 신화의정원은 그동안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다가 올해부터는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이 곳에는 공원조성사업 중에 나온 크고 작은 돌을 모아뒀다가 최근에 돌담전문가와 일반인들의 참여로 한라산을 형상화했다. 한라산 등산코스 4개를 재현해 놓은 것도 흥미롭다.

매년 5월 15일 설문대할망제가 거행되는 제단.
매년 5월 15일 설문대할망제가 거행되는 제단.

# 매년 5월 15일 설문대할망제 거행

그리고 설문대할망탑에서는 매년 5월 15일 설문대할망제가 올려진다.

가뭄, 흉년으로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이 안타까워 죽솥에 빠져죽은 어머니를 찾아 오백 아들들이 땅을 치며 대성통곡하다가 흘린 피눈물이 붉게 물들어 철쭉꽃이 피어났다는 대목과 5월은 만물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풍요로운 계절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기념하게 된 날이다.

지난 2004년 제주에서 비무장지대로 향하던 생명평화순례단 일행들이 4·3평화공원을 거쳐 제주돌문화공원을 지날 때 이 일행이던 도법스님과 수경스님이 제주돌박물관 공사장에서 제를 지냈던 날도 5월 15일이었다.

제주돌문화공원관리사소는 이어 2005년과 2006년에도 설문대할망제를 지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비공개 행사였다. 그러다가 2007년부터 자체행사로 제1회 설문대할망제가 시작됐다. 2009년부터는 지금의 여성 제관 9명이 주재하는 형식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설문대할망 신화를 의식화해 관람객들과 어우러지는 시·춤·굿 등 독특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전통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5월 한 달간 돌탑쌓기 체험을 진행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행사는 비대면으로 치러지고 그간 행사의 기록을 모은 책자를 발행하는 것으로 대체됐지만 지난 5월에는 다시 설문대할망제가 거행됐다.

제주돌문화공원이 기념비적인 향토문화사업으로 완성도가 높아지는만큼 제주의 창조신화인 설문대할망제 문화행사도 축제형식으로 만나보게 될 전망이다.

아직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제주돌문화공원의 핵심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설문대할망전시관도 2024년에는 개관될 예정이다.

설문대할망 신화를 바탕으로 건축 기획안이 인체모양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큰 특징이며 이 안에는 설문대할망과 더불어 제주의 돌문화를 조망할 수 있는 풍성한 콘텐츠들이 꾸며질 계획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박물관의 필수 콘텐츠로 자리잡고 있는 몰입형 미디어아트도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 제주돌문화공원의 탄생역사 담긴 ‘19계단’

제주돌문화공원을 관람하다보면 ‘매직아이’를 하듯 눈에 띄는 숫자가 있다.

제주돌문화공원이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탐라목석원이 기증한 자료가 밑바탕이 됐다는 사실은 도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제주돌문화공원사업을 추진했던 당시 북제주군(현 제주시)과 탐라목석원이 협약을 체력한 날이 1999년 1월 19일이었고 탐라목석원에서 전시자료 1만2000점을 기증한 날도 2000년 1월 19일이다.

또 제주돌문화공원 기공식을 했던 날도 2001년 9월 19일이다. 이날 ‘제주종합문화공원’이던 당초 기본기획안 이름도 제주돌문화공원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숫자 ‘19’와의 인연은 공원 한 곳에 기념처럼 새겨져있다.

매표소 초가형 ‘표 받는 곳’을 지나면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상징탑으로 가는 길목을 연결하는 돌계단이 있다. 일명 ‘19계단’은 지금 제주돌문화공원을 만든 1999년 1월 19일을 기념하기 위해 19개 돌을 놓아 만든 ‘역사’의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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