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다문화가정 기획–제주에서 만나는 세계
[인터뷰] 한국생활 5년차 네팔 새댁 체도마씨
“형부 소개로 만난 남편과 행복…제주서 부모 상봉 큰 기대”
“한국국적 취득 노력…다문화여성 빠른 정착 위해 도울 것”

네팔 새댁 체도마씨가 제주매일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네팔 새댁 체도마씨가 제주매일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체도마씨(29)는 네팔의 추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네팔에는 매년 9월말에서 10월 초쯤 한국의 추석이라고 불리는 ‘다사인 축제’가 열린다. 다사인은 매년 네팔 달력 비크람 삼밧(Bikram Sambat) 여섯 번째 달인 아슈윈(Ashwin)의 초승달이 뜨는 날부터 보름달이 뜨는 날까지 15일 동안 열린다. 힌두교 여신 ‘두르가’를 숭배해 종교적인 성격이 강함에도 네팔 국민 모두가 함께 즐기는 가장 큰 축제이자 명절이다.

이 시기는 추수를 마쳐 풍족함이 넘치는 때여서 네팔인들이 새옷을 장만해 입고 가족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한국의 추석과 닮았다. 집안 어른들은 걱정과 어려움을 이겨내라는 의미의 축복을 기원해주는데, 다사인의 또 다른 명칭인 ‘다사하라’(Dashahara)는 바로 ‘나쁜 기운을 쫓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제주에 살고 있는 체도마씨가 이날을 고대하는 이유는 이 기간에 네팔에 있는 부모가 제주로 오기 때문이다.

그가 네팔에 다녀 온 것은 결혼한 2018년이 마지막이었다. 곧바로 부모님을 한국으로 초대하려 했지만 그해 말부터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코로나19라는 악재로 성사되지 못했다. 지금도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고 있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해외여행이나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그의 부모가 한국으로 올수 있게 됐다.

한국의 추석은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와 지냈지만 그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그의 친언니도 제주에서 살고 있어서다. 체도마씨의 남편도 형부로부터 소개 받았다.

그는 “2015년에 먼저 결혼한 언니의 남편(형부)이 친구를 소개 시켜줬는데 그 사람이 지금의 제 남편”이라고 말했다. 체도마씨는 형부의 친구인 지금의 남편과 만나 2017년에 결혼했다. 슬하에는 4살 된 딸이 있다.

그는 가끔씩 언니와 만나 쇼핑도 하고 네팔 식당에서 고국의 음식을 먹으며 향수를 달랜다고 한다. 그는 “남편이 잘 해주는데다 든든한 버팀목인 언니가 제주에 있어 한국생활에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추석은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반면, 네팔은 힌두교 여신인 두르가와 부처님을 비롯한 여러 신들에게 올린다”며 한국과 네팔의 추석을 비교해 설명하기도 했다.

체도마씨의 가족은 ‘한국통’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오빠 부부도 경기도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의 오빠와 아내는 네팔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는 도중 만나 결혼해 한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두 달 전에 오빠 부부와 만났다.

특히 체도마씨의 아버지는 과거 2년간 한국에서 근무했던 만큼 한국어를 잘한다고 한다.

체도마씨는 “언니는 결혼한 이후 단 한 번도 네팔에 가보지 못했다. 인터넷 영상 통화나 SNS 등을 통해 안부를 주고받지만 직접 만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며 “부모님이 한국에 올 때 육지에 있는 오빠와 새언니도 제주에서 만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주에 오면 부모님과 같이 바다에 놀러 가고 싶다. 엄마는 처음으로 한국에 온다. 네팔은 바다가 없어서 꼭 한번 배를 타보고 싶다”고 바랐다.

그는 무엇보다도 엄마가 한국에서 수술을 받게 된다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그는 “엄마가 담석에 걸려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 의료 강국인 한국에서 안전하게 수술을 받게 돼 안심된다”고 말했다.

8남매 중 막내딸인 그는 “가족 모두가 모이지는 않지만 네팔의 가장 큰 명절날에 제주에서 부모님과 언니, 오빠를 만나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그의 오빠 중 2명은 이라크에서 3명은 네팔에서 거주하고 있다.

체도마씨는 아직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다. 그의 국적은 네팔이다. 그는 “한국의 사회통합프로그램 5단계 심화과정(한국사회의 이해)을 공부하고 있다”며 “한국사회와 한국법, 역사를 이해하는데 어려운 측면이 있어 포기한 사람이 많지만 저는 끝까지 노력해 좋은 결실을 맺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씩 통역일도 봐주고 있다. 현재는 직업이 없지만 열심히 노력해 향후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능력이 갖춰진다면 다문화여성들이 한국사회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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