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큐멘터리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 일산서 첫 상영
역사적 사실 알려야 공감하고 오래 기억…“함께 호흡해야”
김경만 감독 “영화 통해 4·3 궁금해 하는 계기 되길 바라”

영화 상영 이후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왼쪽부터 이은선 영화 전문기자, 김영란 연구원, 김경만 감독. [사진 = 김진규 기자]
영화 상영 이후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왼쪽부터 이은선 영화 전문기자, 김영란 연구원, 김경만 감독. [사진 = 김진규 기자]

김경만 감독의 신작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제목처럼 반세기 넘도록 침묵했던 제주 할머니들이 4·3의 아픈 경험을 끄집어낸 장편 다큐멘터리다. 제주4·3사건을 여성 구술자(4·3생존 수형인)의 생생한 증언으로 담아 낸 이 영화는 25일 오후 7시 30분 경기도 일산 메가박스에서 첫 상영됐다.

이날 첫 상영회에서는 ‘돌들이 말할 때까지’에 출연한 송순희 할머니(97세)와 그의 자녀, 김묘생 할머니(94)의 자녀,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진상조사팀과 제주4·3기념사업회 관계자들도 함께 관람했다. 영화 상영 소식을 듣고 찾아온 4·3유족도 있었다.

이 영화는 4·3생존수형인 등 당시 군법회의에 의해 형무소에 끌려갔던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오롯하게 담아냈다.

영화는 4·3사건 당시 고초를 겪었던 다섯 명의 할머니(양농옥·박순석·박춘옥·김묘생·송순희)가 중심축을 이룬다. 이들 할머니는 1948년 제주4·3이 발생할 무렵 스무 살 내외의 여성이었다. 양농옥 할머니를 제외한 이들은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형무소에 수감됐다. 양농옥 할머니(92)는 9살에 부모가 일하는 일본으로 건너가 16살에 제주로 귀향했다. 곧바로 터진 4·3사건에서 아버지와 언니, 형부, 조카를 잃었다.

영화는 70여년이 지나서야 제주4·3도민연대 등의 노력으로 재심을 통해 죄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던 과정을 그렸다.

4·3 당시 제주는 탈출구가 없는 고립된 섬이었다. 제주 전체가 붉은 피로 물들었던 거대한 감옥이자 잔혹한 학살터다.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에 출연한 송순희 할머니(왼쪽에서 세 번째)가 딸들과 김영란 연구원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에 출연한 송순희 할머니(왼쪽에서 세 번째)가 딸들과 김영란 연구원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당시 군경들은 무차별적으로 잡아가 갖은 고문을 하면서 ‘없는 죄’를 강요하며 뒤집어 씌웠다. 할머니들이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한 뒤 전국의 형무소에 갇혀서야 ‘이제야 살았다’고 안도하는 장면과 “아버지가 총살당한 것은 행복한 것이다. 죽창이 아니기 때문에 오랜 고통 없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거나 형무소에서 낳아 기르던 아기가 사망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 관객석에서는 길게 ‘아~’하면서 안타까워하는 탄식도 들렸다.

“지옥과 같은 경험이다. 또다시 제주4·3과 같은 일을 겪게 된다면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할머니들은 “오랫동안 자식들에게도 말하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 역사적으로 이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 조명된 것은 기쁘다”고 말했다.

김경만 감독은 영화 상영 이후 관객들과의 대화에서 “역사적 사실을 다큐멘터리라는 영상을 통해 담았다.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4·3이 왜 일어났는지 궁굼해 하고 찾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영화에서 할머니들의 증언을 이끌었던 김영란 4·3도민연대조사연구원은 “실태조사를 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70여년이 지나는 세월동안 가족에게 조차 이러한 사실을 숨겨야 했던 것”이라며 “역사적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공감하고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젊은 세대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나무랄 것이 아니라 이러한 영화를 통해 함께 호흡하며 다가서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14회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본선에 오른 이 영화는 국내외 다른 영화제에 출품되는 만큼, 내년 또는 내후년쯤 일반 극장에서 상영될 전망이다.

영화 상영 이후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왼쪽부터 이은선 영화 전문기자, 김영란 연구원, 김경만 감독. [사진 = 김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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