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 기획–제주에서 만나는 세계⑭
제주시가족센터 다문화사례관리사 이경월씨
“다문화가정이라고 무조건 퍼주지 않아…색안경 벗겨지길”
“형식적인 행사 도움 안돼…제대로 배우는 기회 제공돼야”
“결혼이주여성들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자세 필요”

제주시가족센터에서 다문화사례관리사로 근무하고 있는 이경월씨.
제주시가족센터에서 다문화사례관리사로 근무하고 있는 이경월씨.

“결혼 이주여성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저를 믿도록 하는 것이 업무의 시작이죠”

제주시가족센터에서 다문화사례관리사로 근무하고 있는 중국 출신의 이경월씨(50)는 다문화가정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일반적인 문제부터 법적 문제까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씨는 “가정마다 겪는 어려움은 제각각이다. 개인 정보 보호법상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경제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면서 “법적인 도움이 필요하면 변호사 사무실이나 법률사무소에 동행하기도 하고, 몸이 아픈데 곁에 아무도 없으면 병원에 함께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언어 소통이라는 벽에 부딪히다 보니 이씨에게 기대는 경우가 많다. 이씨는 친근한 큰 언니 같은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결혼이주여성들이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아니다.

돈이 필요로 해서 찾아왔지만 당장 해결되지 않으면 마음의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씨도 이들의 어려움을 알고 있지만 제도적인 문제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씨는 “센터를 찾아온 외국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지나야 편하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이전에는 본인들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찾아왔는데도 저희가 다가가면 경계한다. 전화를 해도 ‘왜 전화했느냐’고 따지듯이 묻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안부 인사만 하면서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본인의 어려운 점을 이야기한다는 게 조금은 불편하지만 친해지다 보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한다. 금전적인 부분은 저희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되지만 정서적인 지원은 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하다 보면 조건이 맞지 않아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며 “중위소득 51~60% 사이에 있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그는 “중위소득 50%의 경우 아이들 학습비가 지원되는데 이들에게는 100만원이라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같은 소득이지만 아이가 없는 경우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 따져야 하는 조건이 많아 지원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문화가정이면 다 퍼주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실상은 전혀 다르다”며 “우리도 먹고 살기 어려운데 다문화가정만 퍼주느냐고 하는데 이제는 소득대비 지원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초창기에는 퍼주기식 다문화 지원이 많아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와 관련된 인터넷 카페도 생겼다”면서 “‘다문화’라는 세 글자만 들어가면 사업을 따오기 쉬운데 이제는 이러한 사업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다문화가정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 한국인들에게 반감만 생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예를 들어 김치 만들기 사업의 경우에도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다문화가정은 김치를 만들 줄 모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르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배추를 사 오는 것까지는 이해되지만 양념을 만들기 위해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 순차적인 절차를 하나하나 가르쳐 줘야 하는데 미리 준비된 양념을 배추에 버무리기만 하면 끝난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 비해 형식적인 사업이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이런 사업을 왜 하는지, 꼭 사업명에 다문화를 넣어야 하는지 허무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예전에는 퍼주기식 사업을 많이 하다 보니 이제는 뭔가를 주지 않으면 잘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 편하게 김치를 얻어오는데 의미를 두는 사람도 있지만, 제 입장에서는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배워갔으면 한다. 한국사회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기억되도록 체험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는데 조금 더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결혼 이주여성들이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한국어는 필수다. 남편과 항상 함께 할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대부분 남편들과 나이 차이가 많다”며 “남편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남편하고만 소통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자녀 양육을 비롯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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