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거와 끊임없는 대화…현장 보전 ‘아랑곳’

평화와 인권의 학습장 미래 세대 전승위해 필요

4·3 당시 제주섬은 모든 마을이 피해지역이었다. 제주매일은 제주4·3유적지가 평화와 인권의 학습장으로 미래 세대에 전승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유적지 보존과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2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현재 제주은행 표선지점이 설립된 곳은 4·3당시 제주도 주둔 제2연대 1대대 2중대 1개 소대가 자리했었다. 이곳에 잡혀 온 주민들은 표선백사장으로 끌려가 학살됐지만 지금은 당시 흔적을 볼 수 있는 안내판은 설치되지 않았다. [사진 =김진규 기자]
현재 제주은행 표선지점이 설립된 곳은 4·3당시 제주도 주둔 제2연대 1대대 2중대 1개 소대가 자리했었다. 이곳에 잡혀 온 주민들은 표선백사장으로 끌려가 학살됐지만 지금은 당시 흔적을 볼 수 있는 안내판은 설치되지 않았다. [사진 =김진규 기자]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다. 현장이 가진 기억은 역사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2001년 1월 12일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제주4·3은 입에 담는 것조차 반세기가 넘도록 금기시 돼 왔다. 이러한 4·3특별법이 지난해 개정되자 제주도민들은 4·3에 봄이 왔다고 한다.

최근에는 제주의 아픈 과거와 오늘날의 화해와 상생, 평화정신을 세계인이 함께 기리기 위해 4·3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제주4·3사건은 냉전과 분단의 국내외 정세 속에서 빚어진 거대한 국가 폭력에 의해 제주도민들이 집단 희생된 비극을 극복하고 이뤄낸 ‘진실·평화·화해·상생’의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도내 곳곳의 4·3순례지에는 그 흔한 안내 표지판조차 없는 곳이 허다하다. 4·3유적지에 대한 관심과 대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도내 설치된 4·3유적지 안내판은 41곳에 불과하다.

제주매일은 지난해 12월 11일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도민연대, 대표 양동윤)가 진행한 ‘도민과 함께하는 표선지역 4·3길 답사’에 동행했다.

학살터로 추정되는 표선 버들못 주변 밭(표선면 표선리 관정로 15~13번지 일대)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1948년 12월 22일, 표선국민학교에 수용됐던 가시리 주민 도피자가족으로 몰린 70여 명이 총살당한 곳이다. 토벌대는 수용됐던 주민 중 호적 상 가족이 없는 가족을 도피자 가족으로 몰았는데, 흙만 살짝 덮인 채 1년 정도 방치됐다가 가시리가 재건되면서 유족이 하나 둘 찾아갔다’고만 적시됐다.

가시리 주민 92명이나 조사도 재판도 없이 몰살당한 4·3 유적지에 ‘그저 희생됐다’는 내용만 명시돼 아쉬움이 있었다.

1948년 12월 22일 표선국민학교에 수용됐던 가시리 주민 도피자가족으로 몰린 70여 명이 총살당한 곳으로 추정되는 표선 버들못 주변 밭에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1948년 12월 22일 표선국민학교에 수용됐던 가시리 주민 도피자가족으로 몰린 70여 명이 총살당한 곳으로 추정되는 표선 버들못 주변 밭에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이어서 찾은 표선지서 터(표선면 표선중앙로 74-1)는 현재 표선면사무소 부지 내 공영주차장으로 편입돼 그 흔적을 찾을 수조차 없었다. 공영주차장 서쪽 입구 구석에 시멘트 계단과 기둥 하나가 그때 저서 입구임을 말해준다.

표선지서는 일제강점기 1915년 경찰관 주재소로 성읍리에 설치됐다. 표선지서는 4·3당시 표선면민 토벌중심이었다. 토벌대는 경찰과 주둔 군인, 민보단 등으로 구성돼 표선면 중산간 마을 가시리, 성읍리, 세화리, 토산리 주민 등 수백명을 체포·학살했다.

현재 제주은행 표선지점(표선면 표선동서로 259)이 설립된 곳은 4·3당시 제주도 주둔 제2연대 1대대 2중대 1개 소대가 자리했었다. 이곳에 잡혀 온 주민들은 결국 표선백사장으로 끌려가 학살됐다. 지금은 당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양동윤 대표는 “제주섬 전체가 4·3유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마을마다 피해지역이고 지금도 생생한 4·3역사가 숨 쉬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안내판 조차 없어 씁쓸하다. 도민연대는 4·3유적지를 알릴 수 있는 조사와 답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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