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남쪽 허리께에 있는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자줏빛 도는 보랏빛 꽃이 흐드러지게 핀 거목에 홀딱 반해 그 아래 한참 머물다 갔더랬다. 수백 년은 족히 살았음직한 그 나무는 ‘멀구슬나무’였다.

제주에서 먹쿠실낭이라 부르는 멀구슬나무. 겨울날, 초가를 두른 돌담과 어우러져 바람 모양으로 뻗은 가지에 일부러 절제하듯 몇 안 되는 열매를 달고 있던 그 나무.

우리나라 남부지방과 일본, 타이완, 서남아시아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지만, 멀구슬나무는 제주풍광에 참으로 잘 어울려 오로지 제주에만 사는 나무처럼 느껴진다(나만 그런가?).
멀구슬나무를 볼 때마다 저걸 가로수로 심으면 어쩔까 싶어진다.

도심지 거리에서 만나는 멀구슬나무라. 봄에는 흐드러진 보랏빛 꽃으로, 여름에는 풍성한 초록빛 잎사귀로, 가을에는 황금빛 열매로, 겨울에는 바람을 닮은 몸매로, 사계절 내내 우리들 눈과 마음을 즐겁고 풍요롭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사람들은 언제부터 가로수를 심었을까. 도로 위에 나무가 있는 형태를 나타내는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가 있고, BC 5세기쯤 중국에서 ‘열수(列樹)’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하니 가로수의 오랜 역사가 짐작된다.

이집트에서는 무화과나무 계통을, 고대 중동지방에서는 무화과나무와 아몬드 나무 따위의 유실수를 가로수로 심어 가난한 사람이나 나그네들이 따먹게도 했단다.

사람사회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 때문이 아니더라도, 가로수가 없는 거리는 어색하고 답답하다. 삭막하다 못해 끔찍하다. 가로수는 도시의 숨통인 것이다.

더구나 “덥다”라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오는 요즘, 거리에 나가면 눈과 발은 저절로 가로수에게로 간다. 폭염과 뜨거운 햇볕을 날 채 뒤집어쓰고 서있으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터질 듯 싱싱한 초록으로 빛날 수 있는 것인지, 눈에 담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그 생명력이 신비스럽기만 하다.

제주시에도 천천히 걷고 싶은 가로수 길이 몇 있다. 너도밤나무, 담팔수, 느티나무, 벚나무… 굵게 자란 몸통 위로 마음껏 가지를 뻗고 이들이들한 잎사귀를 한껏 피워낸 그 가로수들을 보노라면, 그 아래 머물다 가고 싶어진다. 의자가 몇 개 놓여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협죽도, 동백나무, 후박나무도 나름대로 좋다. 그것들 가운데는 사철 내내 푸른 나무도 있지만, 꽃과 단풍과 열매로 철마다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며 도심에서 ‘제주의 사계’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도시에서는 그 무엇보다 가로수들에게 먼저 계절의 변화를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도무지 철을 알 수 없고, 제주와 어울리지 않는 가로수가 있다. 바로 종려나무 따위의 야자수과 나무들.

누구는 그 나무들이 남국의 정취(제주에서는 당연히 제주의 정취를 느껴야지 웬 남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한다지만, 나는 볼 때 마다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그것들은 철없이 쑥쑥 자라서 키가 웬만한 건물보다 웃자라 있다.

게다가 결코 산뜻한 모양이 아니다. 몸통은 꺼끌꺼끌해 도무지 곁을 주지 않고 하늘 높이 걸려있는 커다란 잎사귀들은 제주바람에 갈가리 찢겨있거나 트미한 갈색으로 바짝 마른 채 답답하게 매달려 있다.

바람이라도 좀 불라치면 저 높이서 미친 듯 머리를 흔들며 “아, 정말 못 살겠다”고 막 난리를 치는 듯하다. 그 모양이 참 정이 안 가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어쩌다 제주 땅에까지 와 뿌리를 박고 서서 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제주는 다 알다시피 ‘식물의 보고’다. 식물의 보고답게 한국특산식물은 물론이고 지구상에서 오로지 제주에만 있는 ‘제주특산식물’도 참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들만 가지고 가로수로 심고 도심 곳곳을 꾸며놓아도 ‘한 관광’감이 되지 않을까.

방송구성작가  문   소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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