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해방 직후 음력 설은 구시대문물로 인식되며 양력 설 권장
민속학계·유림계 요청으로 1985년부터 지금의 ‘민속 문화의 날’로 제정

차례상에 올리는 떡은 땅과 밭, 해와 달 등 우주삼라만상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차례상에 올리는 떡은 땅과 밭, 해와 달 등 우주삼라만상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민족 대명절 설이다. 계묘년(癸卯年) 설 명절은 유난히 더 반갑다.

가족 만남까지 ‘통제 아닌 통제’를 하던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3년 만에 찾아온 명절다운 명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음력 설이 지금처럼 민족 대명절로 인정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우리나라의 설 연원은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근대국가에 들어서며 태양력에 의한 신정과 전통적인 음력설 두 개의 설이 있었다.

1895년 을미개혁으로 사실상 폐지되었던 음력 설날을 되찾겠다는 취지에서 1985년 매년 음력 1월 1일부터 민속의 날 또는 민속절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됐다. 그러나 지금과는 다르게 연휴없이 딱 하루만 쉬었다.

이어 국내 민속학계와 유림계 등이 정부에 양력 설은 일본 잔재가 물들어 있는 신정 풍습은 조상들의 전통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음력 설 부활을 끊임없이 요청했다.

결국 정부는 1985년 매년 음력 1월 1일을 기점으로 민속의 날로 내무부 훈령으로 제정,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 성읍, 제주서 유일하게 ‘음력 설’ 고수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마을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이중과세를 없애자는 정부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음력 설을 고수한 유일한 마을이다.

성읍마을은 양력 설을 ‘일본멩질’이라고 따르지 않았다.

한학자 오문복 선생은 “양력 설을 권장하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구정을 세는 공무원은 파면되기도 했다”면서 “감귤 등 농업 기반인 제주지역에서는 양력 설을 지내기에는 일손이 바쁜 시기였기 때문에 구정 설이 현실적으로 맞았다”고 설명했다.

설 명절에는 가족, 친지가 모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한 해 무사안녕을 기원하면서 덕담을 나눴다.

# 차례음식 준비 위해 마을공동 ‘돗추렴’ 이뤄져

지금도 명절이 가까워지면 대형마트가 시장에 제수용품을 정성껏 준비했다가 차례상을 차리는데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지금은 마트나 정육점 등에서 고기를 구입하지만 과거에는 마을이나 추렴계(契)를 조직해 돼지를 잡아 나누는 ‘돗추렴’을 했다.

돼지는 머리, 목도래기(목살), 좁착뼈(갈비와 연결되는 뼈), 갈리(갈비), 일룬(등심), 숭(배), 비피(엉덩이), 전각(앞다리), 후각(뒷다리) 등으로 나눴는데 제일 맛있게 치는 부위는 목도레기, 전각, 후각, 숭의 순서였다. 공동체 가운데 최연장자가 먼저 부위를 고를 수 있도록 우선 순위가 주어졌다.

과거에는 냉장기술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차례음식을 준비하는 날까지 추렴한 고기는 간장에 담아서 보관하거나 덩어리째 삶아서 보관했다가 차례상을 준비할 때 꼬치에 끼워서 직화로 살짝 구웠다.

이때 고기가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한쪽 부위를 잘라서 삶아 도마 위에서 썰어서 안주를 했던 풍습이 ‘돔베고기’라는 메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 땅·밭·해·별 우주삼라만상 담아

돼지고기와 쇠고기, 꿩고기를 비롯해 바다에서 나는 생선, 어물을 이용한 적 외에도 차례상에 빠지지 않는 떡은 제주에서 무속적 의미가 강하다. 밥(뫼), 국(갱)과 차례상 첫 줄에 올라가는 떡에는 우주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다.

제주는 곡식이라고는 메밀과 보리가 주를 이뤘기 때문에 쌀로 만드는 실패하지 않으려던 노력이 가미돼 정성이 더 들어갔다. 제주지역 차례상에 올라가는 떡은 모양에 따라 제펜, 은절미, 절벤, 솔벤, 우찍 등 이름이 정해졌다.

여러 겹으로 켜켜이 올려 찌는 제펜은 시루떡으로 우주삼라만상 가운데 땅을 의미했고 우주의 시작이기도 했다. 제펜이에 올리는 은절미는 메밀가루나 쌀가루를 반죽해 네모난 모양으로 만들어 끓는 물에 삶아서 건진 것으로 제펜 위에 올려 ‘땅 위의 밭’을 의미했다.

가장 만들기 힘들었던 절벤은 동그란 떡틀로 찍어 만든 반죽을 마주 붙여 문양을 새기는 것으로 ‘해’를 의미했다. 절벤은 두 개가 붙은 채로 먹었고 떡을 떼어 먹으면 부모님 중 한분이 돌아가신다는 속설도 있었다.

해를 의미하는 절벤 위에 솔벤은 제주어로 ‘반찬곤떡’이라고 하는데 반달모양의 떡틀로 찍어냈
다. 준비한 떡 가장 위를 장식하는 것은 우찍이라고 했는데 하늘의 별을 의미하고 작고 앙증맞게 만들어서 떡의 고명처럼 올려서 마무리를 했다.

쌀가루로 반죽을 하고 별모양의 떡틀로 찍어내서 삶거나 기름에 지져냈다.올해는 차례 음식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보며 가족 간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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