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제주 사회통합 어떻게 할 것인가 3. 필란트로피
정보통신·교통 등 발달로 ‘지역성’ 급속한 약화 불가피
도움 필요 도민과 기부희망자간 상시 연결망 구축해야

제주도민의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삶의 질 향상과는 달리 경제불평등이 갈수록 심각해져 사회적 비용과 갈등요소가 커져 지역공동체 복원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사진은 신제주에서 바라본 제주시내 전경.
제주도민의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삶의 질 향상과는 달리 경제불평등이 갈수록 심각해져 사회적 비용과 갈등요소가 커져 지역공동체 복원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사진은 신제주에서 바라본 제주시내 전경.

예부터 제주는 각 마을별로 독자적인 생활권을 형성해 왔다. 식량은 물론 모든 생활물자가 턱없이 부족했던 제주의 선조들은 생존을 위해 마을 주민들이 직접 소통으로 헤쳐 나가야만 했고, 그 지혜의 결정판이 ‘수눌음’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 단위로 소규모 지역공동체가 활발히 움직여야만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정보통신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원거리간 관계형성이 가능해지면서 지역공동체 내의 근간인 ‘지역성’은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반면 공동체 구성원들이 다양화 되고 인터넷과 모바일폰 등을 통한 자유로운 의사소통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보다 넓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와함께 사회의 소통방식이 직접 만남을 통한 사회적 상호작용보다는 SNS 등을 통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일반화 되면서 전통적 방식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소통도 활발해지고 있다. 코로나19를 분기점으로 비대면을 통한 독서모임이나 교육모임 등 다양한 소규모 공동체들이 도내에서도 증가하고 있다.

도시화와 산업화의 영향으로 아파트와 연립주택 등이 과도하게 보급되는 것도 지역공동체 붕괴를 초래하는데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주도민들도 아파트나 연립 등 주택을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주민 간의 관계는 단절되고 소원해지고 있다. 제주지역에서도 이미 공동주택 비율은 전체 주택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분양과 임대가 함께 입주해 있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부모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끼리 서로 왕래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전통적으로 강조됐던 도내 각 마을별 주민들 간의 정서적 유대감과 공동체의식은 사라진 지 오래됐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처럼 소득양극화로 인한 도민간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도 지역공동체가 사라지는 또다른 주요 원인이다. 대표적인 불평등척도를 나타내는 ‘팔마비율’(상위 10%의 보유자산÷하위 40% 보유자산)을 예로 들면 제주지역은 14.4배로 전국 평균 11.2배보다 훨씬 높은 것은 물론 국내 17개 광역 지자체 중 서울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제주도민의 전반적인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삶의 질도 나아지고 있지만 경제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비용과 갈등요소도 반비례해서 커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kg당 50원씩에 판매하는 폐지줍기로 연명하는 어르신들 옆에 고급 외제차를 타고 지나가는 20대가 공존하는 곳이 제주도라는 점은 이전의 ‘수눌음’과 같은 공동체를 부활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수눌음을 원형 그대로 복원할 수 없다면 그 대안으로 지역공동체 구성의 네 번째 요소인 공익성 추구를 위해 ‘필란트로피’ 개념을 제주에서 시범 도입해 활성화 시키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 하다.

현대 필란트로피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페이톤(Payton)은 필란트로피를 “공익을 위한 자발적인 행동 및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에 대한 자발적 기여”라고 정의한다. 특히 최근들어 필란트로피를 “자선, 기부, 봉사, 나눔, 모금 등의 개념을 포괄하며,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공익, 공공선 그리고 인류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원인,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도전정신이자 자발적 행동”으로 그 의미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처럼 도내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주려는 사람을 서로 연결해 주는 사업이 우선돼야 한다. 행정에서도 이들이 제주사회의 공동체 회복이라는 목적을 위해 활동할 수 있도록 공간이나 예산을 지원해 주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돌봄이 필요한 지역주민에게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 보건의료, 요양, 돌봄, 자립생활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사업도 넓은 의미의 ‘필란트로피’로 볼 수 있다.

지역공동체의 시각에서 보면 지난 20세기 80년대 이후 40여년 동안 제주는 도시화와 산업화, 노령화 등이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공동체의식은 와해지경에 이르렀다.

제주는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세대간의 갈등이 우려되는 제주사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자본이 소외된 도민들에게 공동체적 삶의 의미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필란트로피’ 활동을 활성화시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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