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완전한 해결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끝없는 이념 논쟁’ 75년 맞은 오늘날도 진행형…폄훼·왜곡 안돼
진상규명·역량강화 강조…사회단체·학생 연대 인권교육도 필요

지난 24일 제주문학관 대강당에서 김석범과 김시종 특별기획 ‘불온한 혁명 미완의 꿈’ 국제문학 포럼이 진행됐다. [사진 = 김진규 기자]
지난 24일 제주문학관 대강당에서 김석범과 김시종 특별기획 ‘불온한 혁명 미완의 꿈’ 국제문학 포럼이 진행됐다. [사진 = 김진규 기자]

기자가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소설 ‘화산도(火山島)’의 김석범(金石範, 99) 재일 조선인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여름이다. 기자는 ‘재일 제주인의 삶’을 취재 차 일본에 방문, 김 작가의 자택에서 마주했다. 김 작가가 눈물로 붉게 충혈 된 눈으로 기자를 응시하면서 “살아생전 고향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던 말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는 해방 후 남과 북으로 분단된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줄곧 ‘조선’이라는 실체가 없는 국적을 고수했다. 김 작가는 법적으로 ‘무국적자’로 간주되면서 국내 입국이 여러 차례 좌절됐다. 그가 한국 정부로부터 문학가로서 초청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하라는 요구 조건을 거부하는 바람에 번번이 귀국이 무산됐다.

그는 91세가 되고 나서야 난생 처음으로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해 눈물을 흘렸다. 2015년 제1회 제주4·3평화상 수상 차 제주를 방문한 것이다.

김 작가는 4·3평화상 수상 소감에서 “해방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친일파와 민족반역자 세력이 역사의 왜곡과 거짓에 맞서면서 전국적으로 치열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그 동일 선상에서 일어난 것이 제주4·3”이라고 술회했다.

이러한 발언은 이념 시비로 불거졌다. 당시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하태경 국회의원과 일부 보수 세력이 김 작가의 수상 소감에 문제를 제기하자 행정안전부가 4·3평화상 수상자 선정 과정에 대한 감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김 작가의 입국을 불허했다.

지난 24일 ‘김석범과 김시종 특별기획 국제문학 포럼’ 강연 차 제주를 방문한 조동현 도쿄, 제주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 회장은 “당시 한국의 정보 당국은 ‘한국 출입’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통해 재일한국인 지식인들을 상시 협박했다”며 “그동안 일본에서 제주4·3을 이끈 인물들이 사라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회고했다.

조 회장은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에서 1981년부터 1994년까지 13년간 기자로 생활을 하던 중 김일성·김정일의 세습독재체제와 신격화에 환멸을 느껴 기자를 그만두고 1997년부터 김석범 작가와 함께 25년간 ‘4·3의 대중화’ 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김 작가의 4·3평화상 수상 연설로 그의 한국 입국에 따른 보증을 섰던 조 회장은 대사관에 불려가 고초를 겪었다. 입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김 작가뿐만 아니라 조 회장도 한국 입국 제한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오래된 4·3이념 논쟁은 75주년을 맞은 오늘날까지도 진행형이다. 오히려 ‘정당,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막에서 4·3에 대한 폄훼와 왜곡은 더욱 심하게 자행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당 최고위원의 “제주 4·3은 공산주의 폭동”, “4·3은 격 낮은 추념일”이라는 잇단 망언과 진실왜곡 현수막 게시로 역사 퇴행의 단면을 여지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4월 3일 코로나19 여파로 3년 만에 제주4·3평화공원 위령탑을 찾은 유족들과 제주도민들의 마음은 무거웠다.

대선 당시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던 국가 원수는 물론, 의례적으로 참석했던 여당 대표도 국가 공식 추념일을 외면하는 사이 서북청년단 추종자들은 4·3평화공원 진입로에 나타나 “4·3의 역사가 왜곡됐다”고 주장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제주 곳곳에 ‘4·3은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강제 철거한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이 오히려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지금의 현실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하는지 과제를 안기고 있다.

지난 4월 3일 오전 4·3평화공원 진입로에 나타난 서북청년단을 표방한 극우단체와 4·3 희생자 유족이 충돌했다. [사진 = 강석영 기자]
지난 4월 3일 오전 4·3평화공원 진입로에 나타난 서북청년단을 표방한 극우단체와 4·3 희생자 유족이 충돌했다. [사진 = 강석영 기자]

제주 4·3은 누가 정권에 오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점에서 이를 폄훼하거나 왜곡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맞서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 없도록 진상 규명 등의 역량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창후 전 제주4·3연구소장은 지난달 28일 4·3유족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하는 4·3청년포럼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를 부정하는 세력과 단호히 맞서 4·3의 명예가 더럽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4·3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자체 역량강화 교육과 함께 사회단체·학생들과 연대하는 인권포럼 등을 강화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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