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물 공공적 가치 실현⑩ 용천수의 유산적 접근과 관리
이코모스 물 유산 평가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부합’
다양한 전문가 참여 이해당사자간 협력체계 제도화 등 시급

제주 용천수의 구조물 형태를 잘 보여주는 애월읍 상귀리 소왕물
제주 용천수의 구조물 형태를 잘 보여주는 애월읍 상귀리 소왕물

제주의 용천수는 지난 2022년 기준 646개소로 전해지고 있다. 용천수는 해발 약 1600m의 한라산 고지대부터 해안마을까지 넓게 분포하고 있지만 지형·지질적 특성으로 인해 주로 해안에 집중돼 분포한다. 마을 주민들은 식수, 채소 씻기, 빨래, 목욕 등 주요한 생활용수로 용천수를 이용했으며, 수량이 풍부한 용천수는 논농사를 가능하게 했고, 주정공장과 수산 가공공장 등의 제주의 산업 발전역사에 기여하기도 했다.

상수도 보급 이후 용천수의 효용성이 낮아졌으며, 도시개발이 점차 도 전역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지면서 용천수가 매립되고 훼손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제주의 귀중한 수자원이자 물 유산인 용천수가 개발로 인한 수난에 처해 있지만 이를 규제하거나 통제하기 위한 법과 제도는 미비하다.

용천수를 관리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지난 2014년 1월 15일 ‘제주특별자치도 용천수 활용 및 보전에 관한 조례(이하 ‘용천수 보전조례’)‘가 제정되기까지 전무한 실정이었다.

지난 2018년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열대와 아열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의 ‘물과 문화유산’에 관한 테마 연구를 실시했다. 이때 한국은 ‘제주도의 물과 유산’, ‘지속가능한 보전과 이용의 용천수 사례 연구’가 소개됐으며, 물 유산으로서 매우 긍정적인 가치 평가를 받았다. 이는 제주가 ‘물과 관련된 유산’의 국제적 동향을 현재 제주지역에 맞게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코모스의 물 유산의 평가 기준은 기능적 완전성과 이용의 진정성, 문화경관과 관리계획 등을 종합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지녀야 한다.

완전성(Integrity)은 남아있는 유산의 특성을 바탕으로 유산 전체 또는 본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지를 보는 척도이다. 이는 유산의 현존상태를 기준으로 훼손, 멸실의 정도, 본래 구성요소의 기능과 특성의 유지 정도를 통해 증명될 수 있다.

진정성(Authenticity)은 해당 유산이 본래 지니고 있는 가치에 대한 진실성과 신뢰성에 대한 척도이다. 문화유산의 경우 진정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유산의 유형, 형태와 디자인, 재료와 구성 물질, 용도와 기능, 전통 기법과 관리체계, 입지와 주변 환경, 언어 및 기타 무형유산, 정신과 감정, 기타 내부 및 외부요인 등 다양한 속성들이 진실되고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돼야 한다.

이 기준을 제주 용천수 사례에 적용하면 먼저 완전성 측면에서는 진입로 및 출입구, 물통, 물팡, 돌담 등 제주의 용천수 이용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구조물 형태가 잘 보존돼 완전성 측면에서 가치가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진정성 측면에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물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변화가 반영돼 변모되는 양상을 나타내며, 용천수 시설 구조의 변형, 재료의 보완과 교체, 물 활용 내용의 변화 등은 살아있는 물 문화의 특성으로 인정될 수 있다.

또한 재일동포 등이 출연한 재원으로 해당 마을에서 기부를 하거나 마을 주민들이 물 이용 시설을 정비한 사례들은 물 유산을 자발적으로 보전하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외도 월대천과 주변 경관(2022년 7월, 축제사진, 제주지하수연구센터 제공)
외도 월대천과 주변 경관(2022년 7월, 축제사진, 제주지하수연구센터 제공)

제주 용천수가 잘 관리되는 마을은 전통사회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해 바다와 용천수, 주변 마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경관을 보인다.

마지막 관리체계 측면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용천수 활용 및 보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용천수의 보전·관리 계획과 용천수의 정비·복원·개발이용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는 관리계획을 수립하는 방안도 하나의 대안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제주 용천수를 유산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매우 의미는 새로운 시도이며,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지속적으로 보전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밖에 물 관리, 토목공학, 수문학, 도시와 공간의 계획, 인문·사회과학과 법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용천수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이 협력할 수 있는 체계도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끝> 강동우 기자

<이 기사는 제주매일이 제주연구원 제주지하수연구센터와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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