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 이적‧간첩죄로 무기징역 한국전쟁때 희생
어머니에게 듣게된 비극, 교사시절 4‧3 알리기 안간힘
한상희 교사, 4‧3 톺아본, ‘4‧3이 나에게 건넨 말’ 발간
희생자‧회복, 생존자 의무 안내…정의‧용기‧희망 제시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25일 제주문학관에서 개최한 ‘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콘서트에 참석한 한상희 작가가 김종민 위원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최병근 기자]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25일 제주문학관에서 개최한 ‘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콘서트에 참석한 한상희 작가가 김종민 위원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최병근 기자]

열여섯에 알게 된 외할아버지 사연은 너무나도 기구했다. 외할아버지는 4‧3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에서 이적죄와 간첩죄를 뒤집어써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서울 마포형무소에 감금됐다가 한국전쟁 때 희생됐다. 그의 어머니는 여덟 살인 1948년 11월 7일, 남원읍 한남리 한 대나무밭에 숨어 집이 불타는 모습을 목격했다.

열여섯, 그가 어머니를 통해 처음으로 접한 외할아버지, 4‧3의 이야기를 향한 궁금증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교사가 된 이후 4‧3을 보다 쉽게 학생들에게 알려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역사, 사회, 지리, 특수교육을 전공했고 1996년부터 2015년까지 역사, 사회 교사로, 2016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제주도교육청 전문직으로 근무하다 현재 중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회복적 학교문화를 만들고 있다.

한상희 교사는 유네스코 세계교육포럼에서 ‘제주에서 세계시민을 만나다’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4‧3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렸다. 각 시‧도 교육청 교사 연수 때 4‧3 강의와 유적지 답사 안내를 맡아 평화‧인권‧통일‧정의의 가치에 관해 소통하고 있다. ‘순이삼춘’을 쓴 현기영 작가와 함께 전국을 순회하는 토크콘서트를 지속하면서, 4‧3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지에 관해 모색하고 있다. 2023년 4월 1일에는 현기영 작가, 강우일 주교, 김종민 4‧3위원회 위원과 함께 ‘왜 우리는 4‧3을 말하는가’라는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그런 그가 세상에 내놓은 ‘4‧3이 나에게 건넨 말’은 4‧3의 역사뿐만 아니라 4‧3과 관련 있는 많은 사람이 본인 스스로 건넨 말이기도 하다. 그는 책에 “4‧3의 영혼들, 역경을 극복해 낸 유족들, 진상규명에 힘을 모은 시민들, 광풍 이후에 다시 제주섬에 찾아와 꽃 피운 자연까지…. 이 모든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고 썼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25일 제주문학관에서 개최한 ‘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콘서트에 참석한 현기영 작가가 한상희 작가 책 소개를 하고 있다. [사진=최병근 기자]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25일 제주문학관에서 개최한 ‘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콘서트에 참석한 현기영 작가가 한상희 작가 책 소개를 하고 있다. [사진=최병근 기자]

제주4‧3을 주제로 한 소설 ‘순이삼춘’을 쓴 현기영 작가는 “한상희 박사가 전하는 역사적 진실은 예리하게 다듬어져 명쾌하지만, 그걸 전하는 방식은 무척 친근하고 다정합니다”라며 “‘4‧3이 나에게 건넨 말’의 ‘나’는 우리 모두입니다. 우리를 나누는 경계와 울타리는 없습니다. 오직 4‧3을 기억하는 형제, 세계시민일 뿐입니다. 이 책이 세계 곳곳에 밀알처럼 가닿기를 소망합니다. 그 밀알이 교육 현장에서는 배움과 가르침이 수평으로 이어지고 넓어지는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요, 삶터에서는 감사와 넘나듦이 풍성해지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언론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4‧3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김종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위원은 “저자는 교육자답게 4‧3이라는 복잡한 사건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해 준다는 점입니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학교 선생님과 어른들이 함께 필독하시기를 권합니다”라고 권장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25일 제주문학관에서 개최한 ‘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콘서트에 참석한 김종민 위원이 책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최병근 기자]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25일 제주문학관에서 개최한 ‘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콘서트에 참석한 김종민 위원이 책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최병근 기자]

이 책은 4·3 광풍이 제주를 휩쓸었던 75년 전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는 책을 통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의 그 한 대목이 어떻게 이어져 와 지금을 이루었는지 기억하게 한다. 또한 그 앎과 기억을 토대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울려야 하는지 마음과 의견을 나누게 한다. 4·3은 그냥 4·3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결과다. 

학살자와 희생자가, 살아남은 사람과 남겨진 사람이, 고통과 인내가, 거부와 수용이, 무너짐과 재건이, 상처와 회복이, 과거와 현재가, 그곳과 이곳이 엉켜 있는 그물망이 4·3이라는 점을 그는 강조한다. 그는 4·3이 미래를 담을 튼튼한 그물망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차분하게 안내한다. 또 진상규명과 피해자의 명예회복, 정의로운 의인들에 대한 묵념으로 자연스럽게 이끈다. 제주출신 민중 미술가인 강요배 화백, 김기삼 작가, 고 고현주 작가의 작품 등이 4·3을 더욱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책은 그가 4‧3을 향해 던진 질문에 답을 찾는 여정의 기록이다. 그가 던진 첫 질문은 4·3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것이었고, 그에 대한 답을 책 1장에 정리했다. 4·3 발발 배경, 당시 제주를 비롯한 국내외 정세, 누가, 무엇이 제주를 희생시켰는지를 썼다. 

두 번째 질문의 주제는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어떻게 삶을 영위해 왔고, 제주는 어떻게 복원됐는지 톺아봤다. 4·3이 하나의 사건이면서 3만 개의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유, 희생당한 사람과 살아남은 사람, 학살자와 누군가를 살린 사람, 진상규명과 기억에 앞장선 사람 등을 기록했다.

특히 2장에서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할애했는데  한 작가는 그 이유로 아버지가 남긴 ‘형제 책임주의’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작가는 “저희 어머니가 어렸을 때 외삼촌과 남겨져 ‘친척 없이 사는 게 너무 외로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이를 많이 낳자고 다짐했다고 한다”고 전하며 “그래서 어머니는 저를 포함해 8명, 외삼촌은 7명을 낳았다”고 소개했다.

한 작가는 이어 “아버지가 자녀 8명을 키우면서 형제끼리 서로 책임져야 한다는 이른바 ‘형제 책임주의’를 만드셨다. 그래서 형제에 대한 애착이 가장 커서 가족 이야기를 책에 많이 할애했다”고 말했다.

그는 3장에서 4·3이라는 가혹한 환경에 던져진 어린이들의 고난과 극복의 삶을 가족사로 그렸다. 또한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제주인의 삶과 노력을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사람의 정의로움과 용기, 희망을 제시한다. 그는 익히 알려진 ‘악의 평범성’을 무력화한 정의로운 용단을 4·3에서 통찰하고 이를 ‘선(善)의 시민성’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개념화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25일 제주문학관에서 개최한 ‘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콘서트에 참석한 한상희 작가가 김종민 위원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최병근 기자]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25일 제주문학관에서 개최한 ‘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콘서트에 참석한 한상희 작가가 김종민 위원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최병근 기자]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25일 제주문학관에서 개최한 ‘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콘서트에 참석한 한상희 작가는 김종민 위원을 비롯해 독자들과 만나 “이 책은 저 혼자 쓴 것이 아니”라며 “현기영 작가님과 김종민 위원님은 저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이날 현기영 작가도 참석해 한상희 작가와 인연을 소개한 뒤 한 작가를 “전사”라고 치켜세웠다. 현 작가는 한 작가 외할아버지 사연을 간략하게 설명한 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이 폐허를 초록으로 덮으라고 유언을 남기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이를 펑펑 낳아서 번성시키라고 했을 것 같다”며 “그래서 제주는 패하지 않고 불패의 섬이 된 게 아닌지 싶다”고 말했다.

현 작가는 4‧3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는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많다며 “4‧3의 트라우마는 손자까지도 유전돼 있다. 유족들은 더 이상 4‧3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4‧3이 무엇인지 현 주민보다 이주민이 더 잘 안다”며 “그런데 한상희 선생은 그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4‧3의 슬픔, 절망을 극복하고, 진실을 탐구하고, 교육자로서 교육을 통해 세상에 진실, 평화, 생명을 알려냈다”고 말했다.

현 작가는 또 “70년 넘는 기간 반공 냉전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의 머릿속을 석회화 시켜버렸다”며 “이분들을 설득하려면 학교에서 인권 교육이 중요하다. 4‧3을 가지고 전쟁과 살육이 아닌 생명 평화 교육을 해야 한다. 한상희 작가는 제주도내 교육계에서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덧붙였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25일 제주문학관에서 개최한 ‘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콘서트에 참석한 강우일 전 주교가 책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최병근 기자]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25일 제주문학관에서 개최한 ‘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콘서트에 참석한 강우일 전 주교가 책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최병근 기자]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 전 주교도 참석해 책 발간을 축하했다. 강 전 주교는 “주교 퇴임 이후 육지에서 진행되는 ‘강우일 주교와 함께 걷고 듣는 제주 이야기’라는 주제로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프로그램에서 4‧3을 알리고 있다”며 “제가 아직 몰랐던 내용도 정확하게 기술돼 있어서 잘 활용하겠다. 특히 청소년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 줘서 4‧3 관련한 소중한 문헌이 하나 생겼다”고 책 발간 의미를 부여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25일 제주문학관에서 개최한 ‘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콘서트에 참석한 한상희 작가가 김종민 위원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최병근 기자]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25일 제주문학관에서 ‘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콘서트를 열고 있다.  [사진=최병근 기자]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25일 제주문학관에서 개최한 ‘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콘서트에 현기영 작가 와 강우일 주교(사진 왼쪽부터)가 책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진=최병근 기자]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25일 제주문학관에서 개최한 ‘4‧3이 나에게 건넨 말’ 북콘서트에 현기영 작가 와 강우일 주교(사진 왼쪽부터)가 책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진=최병근 기자]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