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섬은 청정하고 푸르다. 원시의 풍광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360여개의 오름을 아이들처럼 거느리고 있는 한라산은 난대·온대·한대·아고산대에 걸쳐 자생하고 있는 1800여종의 식물과 4000여종의 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산록(山麓)의 풀들이나 나무들은 서로를 견주고 시샘하지 않는다. 다만 저마다의 태깔을 가다듬고 제 모양새대로 제가 있을 곳에 묵묵히 있을 뿐이다. 그것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이요, 둘이 아닌(不二) 경지를 스스로 드러낸다.

 불이의 참뜻

 그러나 불이가 하나(一)를 뜻하거나 같음(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둘이 아닌 것일 뿐, 개체의 존재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불교의 이상향인 수미산 정상에 오르면 제석천(帝釋天)왕이 다스리는 도리천(?利天), 즉 33천이 있고 그 도리천 위에 불이(不二)의 경지를 상징하는 불이문이 서 있다. 불이의 진리로서 모든 번뇌와 망상에서 벗어나면 해탈을 이루어 부처가 된다고 하여 해탈문(解脫門)으로 불리기도 한다.

 1500여 년 전 신라인의 비원(悲願)에 의해 창건된 불국사에도 불국(佛國), 즉 이상적 피안의 세계에 들어가는 불이문이 있다. 불국사의 자하문(紫霞門)에 도달하려면 청운교와 백운교의 33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것은 33천인 도리천에 올라서야 불이문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조형화한 것이므로, 자하문은 곧 불이문이다. 

 이제 제주 섬사람들은 4.3사건의 아픔을 밑거름 삼아 평화의 섬을 건설하려고 하고 있다. 또한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 열린 민주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법적 수단으로써 ‘특별자치도’를 선택했다. 이것은 제주인이 그린 유토피아 그 자체라 하겠다.

 그런데 사람들은 유토피아로 들어가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의 의견만을 중하게 여겨 제 몫을 크게 하기 원하고 제가 속한 무리의 이익이 다른 무리의 그것보다 더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제주도가 APEC 정상회담 개최지에서 탈락한데 이어 정부혁신 세계포럼 개최지 결정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온 점을 비난해 봤자, 서울-부산 등 대도시와의  지역 불균형 개선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도세가 약하다는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세계가 공감하고 중앙정부와 국회가 수용할 수 있는 제주의 분수에 맞는 꿈과 미래를 말해야 한다.

 盧대통령께서 불이문으로 

 시절인연이 있어서 그런지, 盧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제주지역 지역혁신발전 5개년 계획 토론회’가 이달 하순 열릴 것으로 보여 주목되고 있다. 특히 이번 토론회에서는 제주도가 마련한 혁신발전계획에 대한 시비논쟁이 점화됨은 물론, 盧대통령이 직접 제안한 이후 제주지역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특별자치도의 뼈대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盧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전남목포시청에서 열린 광주, 전남 혁신발전 5개년 계획 토론회에서 현재의 정치적 기류에 대하여 운을 뗀 뒤 '지금은 과거 유신체제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미래로 갈 것이냐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盧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그동안 줄곧 시민사회에서 제기해오던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어서 ‘편 가르기’ 식 개혁 성향이 제주 토론회에서 표출될 경우에 화합과 상생의 분위기 조성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나올까 봐 우려된다.

 불이문! 그것은 너와 나가 둘이 아니요, 진보와 보수가 둘이 아니고, 성장과 분배가 둘이 아니며, 생사(生死)와 열반, 세간과 출세간, 번뇌와 깨달음 등 모든 상대적인 것들이 둘이 아닌 경지를 천명한 것이다.

 민초이든, 도지사이든, 지존이든 계급과 신분을 떠나 한라산 불이문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신라인들이 현세에 구현하려 했던 불국과 같은 이상향(理想鄕)을 건설할 수 없을 것이다.

논설위원 김  승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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