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기다.
삼국지(三國志)를 읽노라면 재미있는 장면이 가득하다.
그 중 제갈공명(諸葛孔明)과 사마중달(司馬仲達)이 한중(漢中)땅을 놓고 싸우며 제 각기 뛰어난 전술을 구사하는 대목을 빼놓을 수 없다.

서촉(西蜀)으로 자리를 옮겨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 완성한 제갈공명은 우리가 대화중에 흔히 사용하는 출사표(出師表)를 유비 (劉備)의 아들 유선에게 바치고 전장으로 나선다.

조조군과 맞선 촉군은 제갈공명의 뛰어난 전략에 힘입어 연전연승을 거두지만 조조군에는 공명에 못지 않은 지략가 사마중달이 버티고 있어 항상 고비를 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버리기는 아깝지만 먹기는 쉽지 않은’ 계륵(鷄肋), ‘일벌백계를 위해 울면서 아끼는 부하의 목을 친다’는 읍참마속(泣斬馬謖) 등 고사성어도 탄생한다.

수 차례의 원정에도 번번이 물러서야 했던 공명은 결국 지금의 산시성(陜西省) 남서쪽 오장원(五丈原)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이를 눈치 챈 중달은 촉군을 섬멸할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전군을 휘몰아 추격전을 벌인다.

공명의 진가가 발휘되는 것은 바로 이때.
죽기 전 유언을 통해 나무로 깍은 자신의 인형을 진중에 배치함으로써 평소 의심이 많던 중달은 ‘또 속았구나’하면서 후퇴하고 촉군은 무사히 회군할 수 있었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겨버렸다.

죽은 이의 생전 활약상이 수만 대군을 사지에서 구해낸 것이다.

최근 친일역사 규명문제가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 있다.
혹자는 ‘한번도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친일역사규명을 반드시 해야 된다’고 하고 혹자는 ‘경제도 어려운데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이며 연좌제의 다름 아니’라고 반발한다.

선친의 과거 행적으로 거물 정치인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
신기남의원은 일본군 오장을 지낸 선친의 전력이 밝혀지면서 여당 의장직을 내놔야 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박정희대통령의 친일 논란과 유신, 정수장학회 문제로 골머리가 아프다.
‘죽은 선친의 과거 행적이 살아있는 자식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왜 내가 책임져야 하나라는 자세보다 조상들의 잘못된 활약으로 자신의 삶이 남보다 훨씬 풍족하지 않았나를 먼저 되새겨 봐야 할 일로 여겨진다.

무조건 지나간 일로만 치부한다면 조상과 후손에게 당당하기 위해 곁눈질하지 않고 오늘을 열심히, 또 바르게 사는 보통 사람들만 바보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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