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을 코앞에든 나이에 가장보고 싶은 친구의 얼굴이라면 초등학교(예전에는 국민학교) 때 코 흘리게 시절이 친구들이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헤어진지 이제 반세기를 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 못해 섬을 떠나 흩어져 살고 있어서 몰라보는 친구들은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표정에 세월이 무상함을 느끼게 하곤 했다.

필자는 1950년대 말에 입학해서 1960년대 중반에 졸업했다. 그 시절의 교육환경이나 여건은 지금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교과서가 유일한 책이었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 추억이 지금 돌아보니 낭만이 서렸고 여유가 있었던 학창시절이었다.

 그 시절 책가방은 없었다. 책을 포자기에 둘둘 말고 남학생들은 대각으로 어깨에 멘다든가 여학생들은 허리에 차고는 고무신에 아니면 맨발로 걸어 다녔다. 불과 2km 이내의 학교 거리인데도 겨울이나 여름 때면 같은 거리인데도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겨울이면 밭담이 바람막이였고 여름이면 그늘이여서 높게만 보였다. 학교에 오갈 때는 같은 반 친구들끼리 무리가 되어 각종 놀이나 싸움을 하고는 이기는 친구의 명령에 절대복종을 했었다.

그리하여 고구마 밭에서 고구마 캐오기,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친구 집에 가서 국수를 삶아 먹거나 풀떡(붕어빵)만들어 먹기도 했고, 학교를 땡땡이(?)치기도 했던 그 시절의 추억담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초등학생으로 돌아가곤 쌍스럽고 억센 말투가 정겹기만 했다.

추억의 한마디를 더하자면 고충석(제주대학교총장)이는 장난치다 선생님께 들키고는 국기게양대에 묶이고는 공포의 벌을 받았던 추억담과 여학생들 고무줄놀이에 가장 방해를 했다는 이야기에 쑥스러운 모습은 영락없는 초등학생이다.

 또 다른 친구는 엎드려 회초리를 맞는데 딱총 화약을 바지 뒷 호주머니에 넣은 것 조차 모르고 맞다가 엉덩이 바지에 불이 점화되어 물통으로 내 던져졌던 추억 등 그 시절을 상기 하면서 박장대소가 끊이지 않는 즐거움은 이순을 코앞에든 나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연평초등학교 제25회 동창들이 60여명 중 하늘나라로 먼저 간 친구들도 10여명이고, 고향을 지키는 친구도 열손가락 이내의 친구들뿐이니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금부터라도 서로 연락을 하며 이름이라도 소리쳐 불러봤으면 한다.

이번 이 모임을 갖기 위해 흩어져 있는 동창들을 찾는데 애쓴 윤옥자 회장과 동창들에게 베풀어준 고충석 총장에게도 같은 동창으로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다음 만날 때는 모교인 연평 초·중등학교에서 학교의 변천사도 보고 초등학생의 마음으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   영   수
우도면 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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