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무자년 제주도민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2만5천~3만명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우리 역사에서 제주 4ㆍ3사건처럼 무참히 왜곡되고 은폐된 사건은 드물다.무고한 민간인들을 집단학살한 국가 권력은 반세기동안 그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4ㆍ3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온통 붉은 색을 칠했다. 그리고 법에도 없는 연좌제의 족쇄를 채워 감시하고 불이익을 주었다.

우리 유족들이 월간조선 2001년 10월호에 게재된 “북의 지령을 받은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제주4ㆍ3무장폭동”, “제주4ㆍ3폭동은 유엔의 결의에 의해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5ㆍ10총선거를 반대하라는 북의 지령에 따라 발생했다”라는 표현에 격분하고 4ㆍ3유족 436명이 돈을 모아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도 바로 이런 피해의식의 발로였다.

그런데 제주지법은 10일 “4ㆍ3사건이 북한과 무관하다”는 진상조사보고서는 문재의 기사 작성으로부터 19개월 후에 발간되었고, 또한 그 기사가 4ㆍ3희생자들을 개별적으로 지칭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기각하였다.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문제의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 겉만 보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그 기사가 작성될 때따지도 고등학교 교과서에 “4ㆍ3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이 일으켰다”라고 기술되어 있었다고 덧붙이기도 하였다. 바로 그렇다. 과거 정권은 이 사건의 진실을 덥고 논의조차 못하도록 금기시하기 위해 고교 교과서까지 악용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가지 고교 교과서에는 4ㆍ3사건에 대해 “북한 공산당의 사주아래 폭동이 일어났다”는 막가는 식의 표현이 있었다. 그러나 진상이 차츰 밝혀지기 시작했고, 이 ‘북한 사주설’표현이 문제가 되자 1990년부터 교과서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01년에 월간조선이 버젓이 ‘북의 지령’이란 표현을 썼는데도, 재판부는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음에 있어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서 언론 편을 들었다.

60주년 전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자를 무자비하게 학살하더니 무자년 올해는 재판부가 무자비하게 희생자를 두번 죽였으며, 과거의 왜곡된 표현에 일응 동조하는 누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제주4ㆍ3사건의 발발 배경에는 1947년 3ㆍ1절 발포사건부터 시작된 탄압이 있었고, 4ㆍ3봉기는 북한은 고사하고 남로당 중앙당의 지시도 없이 남로당 제주도당이 독자적으로 일으켰다는 것이 진실이고, 정부보고서에서도 이를 인정한 사실인데도 말이다.

남한사회에서 ‘북의 지령’이란 표현이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모른단 말인가? 이런 무지막지한 표현을 언론에 쓰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철저한 자료와 근거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이에 대해서 최소한 언론의 신중한 자세를 촉구할 것이라고 재판부에 기대했던 우리 유족들은 너무 순진하고 약한 자이기 때문인가?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 이 글을 쓴다.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본 것 같다는 느낌이다.

원통하게 희생되신 영령들은 슬퍼하고 있으며, 희생자 유족들도 항변하며 분노하고 있음을 재판부는 알기 바란다. 영령들이시여! 노여움을 푸시고 저희들의 잘못을 용서하소서.

김   두   연
제주4ㆍ3희생자유족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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