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들과 함께 ‘추자도 문학의 밤’ 행사를 위해 길을 나섰다.

오늘은 자유와 해방의 날, 배에 오르기도 전에 잔잔한 설레임으로 가득 차다.

아가씨의 마음처럼 변덕스러운 것이 제주의 날씨인데 오늘따라 화창한 날씨가 기분을 업그레이드 시켜 준다.

추자방문의 해로 정하고 참굴비 축제가 열리는 행사기간이어서 그런지 부두에는 추자도로 향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바쁜 일상에서 모처럼 마련한 이런 휴식을 오랫동안 꿈꿔와서인지 도심 속 생활의 찌꺼기들을 바닷바람에 날려버리며 유쾌하게 돌핀호에 몸을 맡겨버렸다.

추자도는 전라도와 제주도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42개의 군도로 형성되어 있는 섬이다.

상·하 추자와 추포, 횡간도 등 네 개는 유인도이고 나머지 38개는 무인도이다.

 한때는 전남 영암군에 편입된 때도 있었고, 완도군에 편입된 때도 있었으나 1910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제주도에 편입하게 되어 제주시 추자면으로 여섯 개 마을 1,400여 가구에 3천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아름다운 섬이다.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네 개의 유인도 가운데 추포도는 2가구주민 4명만 사는 우리나라 초미니 유인도 라고 한다.
 
맨 처음 들른 곳은 고려 말 명장인 최영장군의 신위가 안치된 사당이었다.

 순간 역사의 한 페이지가 생각났다.

요동을 정벌하러 나간 군대가 위화도에서 회군하는 항명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국토의 지도가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장군께서 반란군 때문에 고려왕조를 지키지 못한 한을 품고 가신지 620여년이 지난 오늘, 장군의 생전의 충절과 올곧은 기개를 이곳에서 찾게 된 것이다.

이성계가 이유도 안 되는 四不可論(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

농사철에 군대집결은 옳지 않다. 원정하면 왜구가 쳐들어온다.

비가 많아 질병위험과 군대사기가 떨어진다.)으로 구태타를 일으키지만 않았더라면 당시 몽고와 전쟁을 치러 쇄약해진 명나라를 쉽게 이기고 요동 땅을 차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역사의 흐름대로라면, 지금 우리는 세계 최강국이 되고도 남았을 것을 하고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남는다.

고구려의 수많은 유적들이 즐비한 한반도 면적의 3배가 넘는 비옥한 땅, 요동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가 이성계의 사욕 앞에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씨조선은 국토를 넓히겠다는 고려인이 기지와는 사뭇 달랐다.

이씨조선은 자그마한 한반도 땅을 차지한 것에 만족하여 사색당파로 나누어 500년 동안 집안싸움만 하다가 결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망해버리게 된다.

지나간 역사를 회상하며 장군의 기개와 지조를 떠올려 본다.

장군은 이곳에 외적을 섬멸할 전초기지를 삼고 섬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백성들에게 어망을 만들고 고기잡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다는 기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장군의 애민정신에 감복하여 잠시 고개를 숙였다.

 사당에 안치된 장군의 영정을 보면서 생전의 대쪽 같은 지조와 위용을 느끼며 존경과 감사의 묵념을 했다.

부디 길이 영면하시고 조국수호의 불사신이 되어 주십사 하고 …

사당을 나와 등대산 공원산책로에 들어섰다.

섬 주위를 둘러싼 능선을 걸으면서 추자군도가 연출하는 바다 위 풍경을 감상하느라 만사를 잊어버렸다.

파란하늘에 어울리는 조각구름은 한가로이 노닐고 있고, 드넓은 바다를 가로지르며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바닷새의 운무가 추자군도의 아름다운 자태를 돋보이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거대한 바다와 하늘 밑 공간에 자그마한 섬들이 서로 의지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뿐이다.

바다위에 오롯이 놓인 섬들의 군상, 섬들이 여럿이 모여 연출해 낸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동양화처럼 보였다.

 망망대해가운데 군도의 멋진 풍경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며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저녁식사 후 오늘의 매인 이벤트인 ‘문학의 밤’ 행사를 위해 등대산 공원에 모였다.

 촘촘히 수놓은 밤하늘의 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를 낭송하고 관악대의 연주로 추자도의 밤의 낭만이 농염하게 무르익어 갔다.

낮에 보았던 등대산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키 작은 나무와 이름 모를 풀꽃들, 그중 유난히 곱게 돋보이는 찔레꽃들과 어울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시가 남기는 운율에 따라 감성의 문을 열어젖히고 그 속에 푹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숙소로 제공된 하추자도 복지회관 뜰 앞에 모여앉아 밤새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문우들이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추자도 문학의 밤’ 행사 길에 나서면서 추자도의 모든 것을 알아보려는 생각이었으나 시간의 제약 때문에 버스를 타고 상·하추자도의 겉모습만 대충 살피고 돌아오게 된 게 무척 아쉽게 느껴진다.

 섬사람들의 생활과 그 속의 독특한 삶의 방법이며 체취도 많이 묻혀왔으면 좋았을 텐데 …

아쉬움을 남긴 ‘추자도 문학의 밤’이였다.

강   선  종
총괄본부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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