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여러 번 읽었다. 어느 날 그는 괴테와 대담을 나누는 가운데 "아직도 운명에 매달리는 자가 있는가? 이제 정치가 곧 운명이다"고 큰소리를 쳤다. 나폴레옹의 표현은 정치가 문학에 우위에 있다는 말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정치권력의 오만을 꾸짖는 의미가 깔려있다. 그렇지만 나폴레옹의 권력은 빛이 바랬지만 괴테의 문학은 여전이 빛나고 있다. 

 정치가는 타고난 거짓말쟁이다. 모든 사람은 정치ㆍ경제에 대해 감시ㆍ감독하고 발언할 자유가 있다. 특히 작가는 대중을 대변하고 감시 감독할 책무가 있다. 다만 '얼마나 정의로운가', '객관성 있는가'가 중요하다. 작가가 현실 발언할 때는 자기 이익과 상관없이 정의로울 때이다. ‘정치가란 강이 없는데도 다리를 놓겠다는 사람이다’라고 후르시초프는 말했다, 그런데 이런 정치가 중에서 노벨상을 탄 사람이 있다. 1953년 윈스턴 처칠이 『제2차대전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으니, 너무 아이러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국사에서 문학인으로서 정치 활동에 참여한 사람을 얼마든지 꼽을 수 있다. 누구인가? 고려의 정지상 김부식, 조선의 정철 윤선도, 현대의 시인 김관식 김춘수 양성우, 소설가 김홍신 김한길 등 여러 사람이 정치를 등에 업고 활동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최근까지 활동한 그들을 대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정치와 문학의 관계라면 역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 버락 H. 오바마가 단연 화제다.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혼혈로 태어나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딛고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고 다섯 번째 흑인 상원 의원에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오바마가 정치적으로 성공한 데에는 그의 시적 감수성과 마키아벨리적 정치술수가 뒷받침됐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니까 미국은 건국 232년 만에, 링컨의 노예해방선언 145년 만에, 흑인차별을 위헌 판결한 대법원 결정 40년 만에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오바마의 시적 감수성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오바마는 학생 문집『피스트』에 시를 발표한 문학청년이었다. 하버드대에서는 흑인 최초의 『하버드 로 리뷰』편집장으로 글 솜씨를 뽐냈다. 대학 시절 발표한「아버지」라는 시는 어렸을 때 헤어진 아버지를 만나서 헤어지는 장면을 그렸다. ‘널찍하면서도 망가진, 곳곳에 재로 얼룩진/그의 의자에 앉아/아버지는 TV 채널을 돌리고/시그램 위스키를 또 한 잔 비우며, 묻는다/나와 무엇을 하려는가, 애야/편안한 삶을 살아/세상의 표피와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면서’라고 노래했다.

 오바마는 어떤 정치인보다 잘 쓰여진 이야기의 힘을 아는 인물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그의 정치적 경력보다는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학적 재능에 힘입었다. 결국 오바마는 대통령이 되었다. 오바마는 흑인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흑인의 대통령’은 아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암살될 것이라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영국의 도리스 레싱이 예견했지만, 그것은 선거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말한 ‘나의 꿈’은 오바마의 꿈이기도 하고, 오바마가 생각하는 ‘미국의 꿈’이기도 하다. 이 꿈이 오바마 집권 기간에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요한 것은 오바마 당선이 그 꿈의 아침을 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정치가가 바로 민중의 의지를 믿고 실행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이는 요즘 이명박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서, 문학을 오직 문학일 뿐이지 정치가를 믿지 말자는 말과 상통하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어 너무 씁쓸하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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