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도서관이나 시립도서관을 가 보면 취업 준비생들로 가득차다.

그런데 너도나도 공무원 수험서를 펼쳐 놓고 있다.

국립제주대에 입학한 새내기들이 일찌감치 전공 공부는 때려 치우고 공무원 시험 준비에만 매달린다는 세태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제주엔 공무원 말고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가 마지막 취직 기회라는 흉흉한 소문마저 떠돌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의 격랑 속에 취업시장이 사라지면서 입사를 포기해야 했던 1990년대 초반 학번을 '저주받은 학번'이라고 불렀다.

당시 IMF 학번들은 다행히 취업에 성공했다 해도 구조조정 회오리 바람을 지켜봐야 했고 임금 삭감에다 보너스는 구경도 하지 못했다.

2008년 현재 이들 30대 후반들은 또 다시 감원 바람에 반토막난 펀드, 주택마련 대출금 상환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빚을 갚기 위해 보험을 해약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대학 졸업을 앞둔 02~04학번들은 외환 위기 이후 또 다시 저주받은 세대로 불리고 있다.

일단 소나기를 피해 보자는 식으로 휴학생이 부쩍 늘고, 취업을 포기하고 대학원 진학으로 방향을 트는 졸업반들이 상당수다.

눈높이를 낮추지 않는 한 이들에게 취직은 '그림의 떡'이다. 그나마 얻을 수 있는 일자리도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언제 해고될 지 모르는 불안한 미래를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경기가 어려워져 취직하지 않고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경우 100만명이 넘는 청년 실업자들의 퇴로는 비정규직 밖에 없다.

대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직장으로 꼽히는 공기업은 구조조정 바람 속에 이미 채용규모를 대폭 줄였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한국전력과 토지공사, 주택공사 등 30개 주요공기업의 올해 신규 채용인원은 946명으로 지난해 2839명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정부가 공공기관에 요구한 경영효율화는 인건비 축소, 신규채용 축소 등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내년에 공무원 95명을 신규 채용키로 해 사상 최고의 경쟁률을 예고하고 있다.

민간 기업의 취업사정도 역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취업포탈 인크루트가 상장사 482개사의 4년제 대졸 신입정규직 채용현황을 조사한 결과, 신규채용 규모는 3만925명으로 작년보다 3.8% 줄었다.

취업준비생들은 정부의 일자리 만들기 비상 대책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보고 있지만 '내 일'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끼고 있다.

취직은 포기하고 '부모 잘 만난 덕에' 자영업 전선에 뛰어들고 싶어도 이 마저 만만치가 않다.

제주지역의 지난달 어음부도율이 200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시중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 제주본부는 지난 10월 제주지역 어음부도율이 1.04%로 2001년 8월의 1.25% 이후 7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10월 제주도내 어음부도율(금액 기준) 1.04%는 전달인 9월의 0.52%에 비해 두 배로 뛴 것이며, 어음부도금액은 64억원으로 전달의 31억7천만원의 두 배를 넘은 것이다.

또 9월의 제주지역 어음부도율 0.52%는 서울을 제외한 지방 평균인 0.41%에 견줘 0.11%포인트 높은 것이다.

이처럼 어음부도율이 높아지면서 자금난을 해결하지 못해 문을 닫는 업체가 지난 9월 3곳에서 지난달에는 도·소매업체 7곳을 포함해 15곳으로 크게 늘었다.

개인회생.파산 신청이 늘어나고 실업급여 지급액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법원 경매 물건도 2000건을 넘어서는 등 불황 탓에 서민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제주지방법원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말까지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884건,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968건에 달하고 있다.

개인회생의 경우 지난 한 해 963건을 이미 넘어섰으며 사상 최다를 기록한 2006년 1089건을 넘어설 것으로 법원은 보고 있다.

여기에다 직장을 잃어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고 있다.

올 들어 10월말까지 실업급여 신청자는 4879명으로 이에 따른 실업급여액은 158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지급액 145억원보다 13억원이나 많은 수치다.

제주도는 전국에서 월 평균 급여액이 190만9000원으로 가장 낮다고 한다. 이 또한 상용근로자의 급여를 평균 낸 것이다.

가장 높은 서울은 262만5000원이다.

청년들이 미래를 채 설계하기도 전에 인생의 벽에 부딪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11년만에 가장 혹독한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임성준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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